더는 못 버텨, 쓰러진 두 노동자 [삶과 문화]

2023. 4. 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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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대책위원회,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가 지난달 28일 서울 쿠팡 잠실 본사 앞에서 고 장덕준 씨 유가족 쿠팡과의 소송 시작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

지난 3월, 키 175㎝ 몸무게 65㎏의 건장한 노동자가 택배 상하차를 하다 쓰러졌다. 다행히 인간은 아니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개발한 2족 보행 인공지능(AI)로봇 '디지트'다. 열심히 물건을 나르던 로봇은 속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풀썩 주저앉아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미국 프로매트 2023 물류박람회에서 시연을 하던 중이었는데, 개발사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이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고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한국 네티즌들은 우리에겐 익숙한 과로사까지 로봇에 반영했다며, 넘어진 로봇을 안타까워했다.

로봇 디지트가 물류센터에 취직했다면 쓰러지기 전에 해고당했을 거다. 쿠팡물류센터에서는 개인휴대용단말기(PDA)를 노동자에게 지급하고, '쿠파고'라고 불리는 AI가 PDA를 통해 노동자에게 포장할 물건의 품목과 수량을 보관된 장소를 알려준다. 쿠파고는 인간이 아니므로 쉬지 않고 지시한다. '디지트'가 박람회에서 보인 속도로 AI의 지시를 수행했다면 AI보다 무서운 인간 관리자를 만나게 된다. 물건을 옮기는 모습을 본 관리자는 '이 초짜는 누가 데려왔나, 속도 좀 높여'라고 소리칠 것이다. 실제 물류센터 노동자의 작업속도는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시간당 생산량(HTP) 기록을 보고 속도가 느린 노동자에게 관리자가 직접 다가와 재촉을 하는가 하면, 방송을 통해 속도가 느린 라인을 지적하기도 한다. 물류센터 노동은 로봇이 견딜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무게도 문제다. '디지트'가 들 수 있는 무게는 16㎏까지인데, 쌀과 음료수가 포장된 상자는 20㎏을 훌쩍 넘는다. 디지트는 너무 무거운 상자를 들다 다시 한번 쓰러지며, 피도 눈물도 없는 관리자를 원망했을 거다.

2020년 10월, 키 172㎝ 몸무게 71㎏의 건장한 노동자가 쓰러졌다. 이번엔 로봇이 아니었다.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7세의 청년 장덕준씨가 과로사했다. 산업재해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고인은 숨지기 전 1주간 주 6일, 62시간 10분을 근무했다. 로봇도 들기 힘든 무게 20~30㎏의 중량물을 하루 평균 20~40회, 3.95~5.5㎏의 물품은 하루 평균 80~100회 운반했다. 사망 당시 노동자의 몸무게는 15㎏ 빠져 있었다.

어질리티 로보티스는 쓰러진 디지트의 모습을 공개하면서 인간을 대체할 매력적인 로봇을 광고하고 투자를 받고 싶었을 거다. 그러나 쿠팡은 박람회에서 로봇을 시연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의 로켓배송 서비스와 풀필먼트 시스템은 이미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시연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로봇처럼 지치지 않으면서도 로봇보다 빠르게 일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가 쓰러지면서 남긴 노동 데이터를 보면, 투자자들은 인간을 대체할 로봇을 개발하는 기업보다 인간을 로봇처럼 활용하는 기업에 더 매력을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동안 로봇에 의해 대체될 일자리를 걱정했다. 불행히도 일부의 인간들은 로봇으로 대체되는 게 아니라 로봇처럼 일한다. 쓰러진 인간은 또 다른 인간으로 대체돼 쉬지 않고 일한다.

쓰러진 로봇 '디지트'는 알아도 산재노동자 장덕준을 아는 사람은 잘 없을 것 같다. 지난 3월 28일 장덕준씨의 유족은 쿠팡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리가 기억하고 두려워해야 할 건 로봇이 아니라는 외침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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