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는 왜 닷새 만에 고개를 숙였나?…정면돌파? 외통수?
■ 일요일 저녁 4시간에 걸친 ‘비공개 최고위’...‘올 것이 왔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일요일 저녁,
민주당 출입 기자들의 휴대전화에 갑자기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비공개 최고위 진행 중’이라는 짧은 내용. 문제는 취재가 철저히 차단됐다는 점입니다.
오후 6시 반쯤부터 무려 4시간 동안 진행된 비공개 회의.
참석자들은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쌓아둔 친분, 다양한 방식의 읍소, 보좌진을 통한 메시지 전달 등 모두 통하지 않았습니다.
‘돈 봉투 의혹’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자리였던 만큼 그만큼 엄중한 분위기였다는 방증입니다.
당초 예측은 당내 기구가 아닌 제3의 별도 기구, ‘진상조사단’을 통한 의혹 규명 정도로 관측됐었습니다. 전날 당 대변인이 ‘디테일은 검토 중’이라고 했기 때문에 자체 조사를 통한 국면 돌파 정도로 예상했었습니다. 자체 조사 무용론이 일찌감치 제기됐기 때문에 포장지를 어떻게 씌울까 정도의 의문만 남아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다음날인 오늘(17일)도 취재는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당 지도부는 연락되지 않았습니다. 회의 직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뭔가 발표’한다는 언질만 받았을 뿐입니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자리에서 일어나더니 90도 인사
그리고 시작된 공개 최고위원회의. 그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며 운을 뗀 뒤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발언과 함께 일어나서 90도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어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는 말씀도 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돈 봉투 의혹’에 대한 검찰의 강제 수사가 시작된 지 닷새 만에 민주당의 공식 입장이 나온 겁니다. 기자들이 따라붙어서 돈 봉투 의혹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이재명 대표였기에 의아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대표의 입에서 공식사과 발언과 송영길 대표 거취 문제에 대한 입장까지 이렇게 빨리 나올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고개를 숙인 것도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 검찰 강제수사 닷새 만에 나온 전격 사과...갑자기 왜?
왜 갑자기 이런 사과에 나선 것일까? 민주당 입장에서는 ‘검찰의 기획수사’나 ‘정치 탄압’ 프레임을 더 끌고 갈 수도 있어 보였습니다. 권칠승 당 수석 대변인은 윤관석 의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다음 날(13일) “여권의 지지가 지금 바닥을 치고 있는 이런 때에 이런 사건들이 나왔다고 하는 게 상당히 좀 의아스럽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제는 그런 프레임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이재명 대표의 측근은 ‘지금은 깔끔하게 사과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해서 사과했고, 그래서 일부러 정치 탄압이나 기획 수사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자체 진상 조사는 당에서 조사 권한도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섣불리 했다가 역풍만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 접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당 안팎 수위 높은 비난 여론 고조... 이 대표의 승부수?
그만큼 지금이 민주당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당 안팎에서 수위가 높은 비난들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자신의 SNS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 차원의 공식 사과와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후진적 비리에 대해 그 싹을 도려내고 일벌백계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관련자들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 지시뿐 아니라, 낡고 낡은 정치문화를 도려내는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당내에서도 이번 의혹만큼은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비 이재명계인 이상민 의원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런 쓰레기 같은, 시궁창에서만 볼 수 있는, 냄새 나는 고약한 일이 벌어진 데 할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비명계이자, 원내대표 출마 뜻을 밝힌 이원욱 의원도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설령 본인(송영길 전 대표)이 몰랐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탈 행위라고 하는 게 진실이라고 해도 (당시 논란이) 송영길 대표 선거 때 만들어진 것이고, 송영길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다”라며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최소한 정치적 책임은 정치인으로서 져야 되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장인상을 치르기 위해 미국에 있다 잠시 귀국한 이낙연 전 대표도 지난 13일 친낙(친이낙연)계 의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자리에 참석한 한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당 상황에 관해서도 얘기했는데, (이 전 대표가) 윤관석 의원 등의 사건에 대해 걱정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이 같은 당 안팎의 비난 여론 등을 돌파하기 위한 카드로 이 대표가 일단은 고개를 숙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책임을 돌리지 않고 직접 사과했고, 투명한 정치, 깨끗한 선거 문화를 만들어가겠다고 해서 외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긍정적인 해석도 내놨습니다.
■ “이 대표 세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대표 너는?”
다만, 비명계인 한 의원은 이런 시각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도 제기했습니다. 이 대표의 평소 화법을 생각하면 “당장 ‘발본색원하겠다’ 이런 내용이 나올 거 같은데, 지금은 세게 말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며 “당장 송 전 대표 와서 조사받아라, 의혹 있는 의원들 제명한다, 이러면 ‘대표 너는?’ 이런 얘기가 나올까 봐 세게 말을 못하고 사과밖에 못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제 언론의 관심은 송영길 전 대표가 당의 요청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언제 귀국할 것인지, 또 현재 수사 선상에 오른 의원들은 일각에서 불거진 탈당론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등으로 옮겨갔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이 대표가 던진 승부수가 얼마나 먹혀들지, 과연 이 카드가 최선의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입니다.
고은희 기자 (ging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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