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전광훈의 ‘정치 본색’
2019년 초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직후였다. 황교안 대표가 취임 인사차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찾았다. 전 목사는 교회 장로인 황 대표에게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매우 정치적 발언을 꺼냈다. 보수 정치판에 ‘전광훈’이란 세 글자가 본격적으로 새겨진 날이다.
전 목사는 그 후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를 이끌며 광화문 집회에서 ‘청와대 진격’ 같은 거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황 대표를 필두로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이 힘을 실어주자 그는 ‘아스팔트 태극기’의 지휘자를 자처했고, 극우적 발언과 돌발 행동은 더욱 잦아졌다. 정치적 존재감과 영향력을 보수정당의 오른쪽에 뒀던 것이다. 수천·수만의 열성 지지자를 가진 목사 정치인은 늘 보수정당 전대를 움직일 수 있다고 호언했다. 그랬던 전 목사가 지난달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국회의원) 200석 만들어주면, 당에서 나한테 뭐 해줄 거냐”고 물어 파문이 일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전 목사와의 결별을 요구하며 미적거리는 김기현 대표를 비판했고, 김 대표는 홍 시장을 당 상임고문직에서 해촉하며 맞섰다. 국민의힘과 전 목사의 밀당이 당 내홍으로 번진 꼴이다.
전 목사가 17일 기자회견을 예고하자 여당과 전 목사가 서로 ‘손절’할 거란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전 목사의 정치적 선택은 또 달랐다. 그는 “오죽하면 목사가 (정치에) 나섰겠습니까”라며 전 국민적 당원 가입 운동을 제안했다. 당원 수가 수백만·수천만이 되도록 만들어서 공천권을 폐지하고, 당원 중심의 후보 경선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말도 나왔다. 그가 택한 것은 국민의힘과의 ‘이별’이 아닌 ‘점령 작전’이었다.
김 대표는 “공천은 우리 당이 알아서 할 것”이라며 일축하고 격분했다. 하지만 전 목사의 당원 가입 운동은 지금껏 거리에서, 교회에서, 유튜브에서 이뤄져왔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여당을 점령하겠다는 극우 정치인의 발상과 호언이 새롭진 않다. 그를 방치하고 급할 땐 손길을 내민 보수 정치인들의 업보일 뿐이다. 당원이 84만명이나 되는 여당이 외부 목회자 한 명에게 휘둘리는 상식 밖의 일이 지금 여의도에서 일어나고 있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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