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국 정보동맹’으로 덮는 미 도청, 사과·신뢰 회복이 먼저다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대통령실 도청 문서 유출 사건이 공론화된 지 열흘이 지났다. 그사이 미국 현역 군인이 기밀문서 유출 용의자로 체포됐다. 러시아 같은 적대세력 해킹이 아니라 기밀취급 인가를 받은 미군에 의한 보안사고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문서에 적시된 내용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한국 대통령실 설명과 달리, 미 정보기관이 실제로 생산한 문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실 도청 의혹의 진상이 규명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것은 한·미 정상회담 성공 개최에만 매달리는 정부 태도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 문제를 한·미 정상회담 의제로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일본까지 참여시켜 3국 정보동맹으로 승화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전화위복’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등의 말로 포장하지만, 일의 순서가 틀렸다.
미 정보기관이 대통령실 도청을 했는지 규명하고, 불법행위를 했다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는 것이 먼저다. 북한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동맹 간 군사정보 공유가 더 중요해졌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 공유도 상호 신뢰가 없으면 그 토대가 튼튼할 수 없다. 대통령실은 서슴없이 도청을 하는 상대와 어떤 신뢰에 기반해 무슨 중요한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것은 사람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상식이다. 그런 점에서 ‘공개된 문서 상당수가 위조됐다’든지, ‘미국이 악의를 갖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주요 외교안보 정책 결정을 계속 맡겨두는 게 적절한지 심각히 고민해봐야 한다. 오죽하면 영국 가디언 같은 외신들이 “한국 당국자들이 진위가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국방부 문서의 중요성을 축소하려고 시도한다”고 지적했겠는가.
한국이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고, 가해자인 미국도 조용히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이번에 미국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사적인 대화까지 수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 국가안보국(NSA)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도청 등이 드러났을 때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은 ‘도청을 않겠다’고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그 약속이 아직 생생한데, 미국의 정보 수집 관행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은 미국의 외교적 리더십과 도덕적 권위에도 큰 상처를 남겼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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