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 1번지] 첨단 측정과학기술로 '세상의 기준' 만든다
'측정표준'으로 세계 시장서 산업 경쟁력 뒷받침
1975년 설립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대덕연구개발특구에 가장 먼저 입주한 1호 연구소다. 당시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1번지'로 신고된 구 주소만 보더라도 그 대표성을 짐작할 수 있다.
표준연은 헌법에 설립 근거가 명시된 국가측정표준 대표기관이다. 표준연이 산업 각 분야에 보급한 측정표준은 수십 년간 한국이 달성한 눈부신 경제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
표준연은 2000년대부터 국가측정표준 확립·유지·보급이라는 고유한 임무와 함께 양자, 우주기술,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우수한 연구성과를 배출하고 있다.
◇ 韓 양자기술 경쟁력 강화 선도=정부는 올해를 대한민국 양자기술 도약 원년으로 선포했다. 표준연은 이에 발맞춰 국가대표 양자과학기술 연구기관으로서 핵심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표준연이 개발한 양자기술은 신개념 컴퓨터, 도청이 불가능한 암호체계, 초고감도 센싱·이미징 등 다양한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다.
표준연은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정하는 양자 국가기술전략센터로도 입지를 굳혔다. 양자 국가기술전략센터는 과학기술기본법 및 동법 시행령에 따른 연구개발투자전략지원기관이다. 표준연은 앞으로 양자 연구개발 투자전략을 수립하고, 국내·외 양자과학기술 저변 확대에 기여할 전망이다.
◇5G·반도체·의료 등 첨단 측정기술 전방위 활약=표준연의 연구성과는 5세대(5G)·반도체·의료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선정한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도 이 기술 성과들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5G플러스팀을 주축으로 한 융합연구팀의 '인공지능 기반 5G 주파수 필터', 반도체측정장비팀의 '반도체 공정 중 실시간 플라즈마 측정 센서', 의료바이오 분야의 '심근허혈정밀진단을 위한 차세대 심자도 시스템 기술' 등 총 3건이다. 이 중 2건은 국내 기업체에 기술을 이전했다.
홍영표 팀장의 주도로 개발된 5G 주파수 필터는 통신사 간 주파수 간섭을 개선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5G 통신품질을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5G 통신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파수 상호간섭을 최소화하는 고성능 필터가 필요하다. 표준연 융합연구팀은 AI를 기반으로 5G 통신시스템에 최적화된 '5G 주파수 필터' 구조를 설계했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필터는 외산 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나고 가격이 저렴해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다. 표준연은 지난해 4월 국내 기업체 ㈜ICH에 기술이전 계약을 완료했다.
이 성과는 지난 3년간 표준연이 시행한 팀제 기반 융합연구제도의 대표적 결실로 꼽힌다. 융합연구팀은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올해의 KRISS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반도체측정장비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플라즈마 센서 측정기도 우수성과 100선에 들며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기술은 반도체 공정 중 실시간 플라즈마 밀도 측정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플라즈마 공정은 반도체 회로 패턴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불필요한 부분은 깎아내는 작업인 '식각 공정'에 사용된다. 반도체 소자가 고도화됨에 따라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는 공정으로, 반도체 생산성이나 수익성의 척도인 수율에 직결된다. 지금까지는 공정 중 웨이퍼 영역의 플라즈마 변수를 직접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없었다. 해외에서 독점적으로 활용되는 센서 역시 직접 측정이 아닌 간접 측정 방식으로, 공정을 멈추고 측정해야 해 반도체 수율을 떨어뜨렸다.
표준연이 개발한 기술은 가동 장비를 멈추지 않고도 플라즈마 양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어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성능평가와 제품 수율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표준연은 기기에 센서가 내장된 '지능형 식각공정 장비' 개발을 추진, 외산에 독점화된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기술혁신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용호 펠로우가 개발한 차세대 심자도 시스템(MCG) 기술도 표준연을 대표하는 성과다. 심전도 방식을 대신해 심장질환을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인간이 만든 자기 센서 중 가장 민감도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스퀴드(SQUID) 센서를 기반으로 해 우수한 진단 능력도 갖췄다. 현행 심전도 검사는 정확도가 낮아 조기 검진을 하더라도 심장질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MCG는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생체 자기를 측정해 각종 심장질환의 조기 진단은 물론 태아의 심장질환까지 진단할 수 있다. 부정맥 원인 검사에서 확인이 거의 불가능했던 허혈증과 심장 돌연사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MCG는 심장질환을 비침습적으로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막강한 장비로, 국내외를 통틀어 대체재를 찾기 어렵다. 외산제품의 국산화뿐 아니라 심장진단의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 기술은 지난 2021년 심장진단 전문기업에 이전됐다.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앞으로도 세계적인 측정과학기술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산업 혁신과 삶의 질 향상을 가져올 우수 연구성과들을 배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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