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란·시리아 이어 하마스와도 대화 ‘광폭 외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대표 초청
15년 만에 관계 회복 방안 등 논의
라마단 축제 종료일 前 도착 예정
中·러시아 영향력 확대 움직임 속
빈살만 왕세자 외교 역량 시험대
이란도 사우디 국왕 공식 초청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지도부를 초청해 관계 회복 방안을 논의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 시리아와 최근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사우디가 같은 수니파이지만 관계가 15년 이상 냉각됐던 하마스에도 손을 내밀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격변이 심화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하마스 측이 21일 이드 알 피트르(라마단 종료를 축하하는 축제)에 앞서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며 “하마스는 세부 일정을 밝히지 않은 채 ‘메카 성지순례 허가를 받았다’며 이번 방문을 종교적 의미로 축소하려 들면서도, 사우디와 냉랭해진 관계를 녹일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마르주크가 사우디 방문을 앞두고 트위터에 “우리는 지역 및 세계의 모든 세력과의 관계를 추구하며, 시오니스트 적(이스라엘)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글을 올린 것은 하마스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번 방문에서는 사우디에 억류된 팔레스타인 수감자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사우디는 2007년 하마스가 자국의 중재 시도에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주축인 파타를 몰아내고 가자 지구를 장악하자 이를 비난했다. 하마스가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며 관계는 더욱 악화했고, 2019년에는 자국 내 하마스 조직원을 대거 체포했다.
앞서 사우디는 이란과 관계를 복원하고 시리아와도 영사 업무 재개, 항공편 정상화 등에 합의한 데 이어 예멘 내전 종식을 위해 후티 반군과도 대화하는 등 전통적인 수니파 대 시아파, 친미 대 반미 구도에 균열을 내고 있다. 17일 이란 외무부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살만 빌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을 수도 테헤란으로 공식 초청했다고 밝혔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의 제이컵 네이절 선임연구원은 “(사우디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고 모든 편과 함께 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이 테러 단체로 지정한 하마스와 관계를 회복하면, 이스라엘과 수니파 국가 간 ‘반이란 동맹’ 구축을 모색하던 미국, 이스라엘의 노력에 어깃장을 놓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과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해 국교를 정상화한 데 이어 주변 아랍국들과 관계 개선 시도를 해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12월 취임 직후 사우디와의 관계 정상화가 최우선 목표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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