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경남 습지들 <하> 등산객·산악자전거 훼손 부추겨…습지벨트 조성 등 나서야
- 양산 신불산, 통제시설 파손·철거
- 등산·탐방객들 통로로 마구 이용
- 천성산 화엄늪엔 라이딩객 몰려
- 지형변형, 토양수분 유실 육지화
- 정부, 화포천 등 습지 복원예정
- 전문가 “난개발 막는 적극 행정
- 주민·방문객 인식개선·협조 절실”
경남지역에는 환경부 지정 습지보호지역 6곳 등 모두 9곳의 대표 습지가 있다. 부울경지역의 유명 산으로 손꼽히는 양산 신불산과 천성산 화엄늪은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인 고산습지지만, 관리소홀로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취재진이 지난 14, 16일 양산녹색환경연합과 함께 2개 습지를 둘러본 결과 유명세만큼 일반인의 진입이 잦았고, 습지를 보호할 시설 등은 부족했다.
▮사람 진입 쉽고 라이딩객 질주
신불산 습지는 해발 750m에 위치한 30만7551㎡로 4개의 습지로 이뤄졌다.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 군락지로 유명한 3늪의 경우 최근 습지 웅덩이에 설치된 목도(덱)가 파손되면서 안전상 문제로 철거됐다. 하지만 대체시설 설치가 안 돼 등산객 등이 통로로 이용하면서 훼손이 진행됐다. 박철문 양산녹색환경연합 회장은 “등산로와 가까워 등산객과 탐방객 등이 통로로 쓰고 있다. 목도가 없으면 습지로 마구 다니게 돼 훼손이 가속화한다”고 지적했다.
3늪지 웅덩이에는 습지임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도 없고, 습지가 진퍼리새에 덮여 있어 습지로 그대로 들어가기 쉬운 형태였다. 습지 전체 구간에 펜스도 제대로 설치가 안 돼 있어 등산객 등이 습지보호지인 것을 모른 채 그냥 들어가는 일도 종종 있다.
천성산 화엄늪은 해발 798m, 0.124㎢ 규모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특히 이곳은 산악 자전거에 의한 훼손이 심각했다. 현장 확인결과 산악자전거가 습지보호구역과 맞붙은 등산로변을 따라 마구 달리면서 땅이 움푹 패여 있었다. 1㎞ 구간에 너비 2m 깊이 70㎝가량 돼 보였다. 화엄늪 주민 감시원은 “금요일과 주말 등 휴일에 산악 자전거가 습지 주변을 달리고 있어 걱정이다. 습지 훼손 우려로 운행중단을 요구하면 못 하게 하는 근거를 대라고 따지기 일쑤라 제대로 막기도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박 회장은 “산악자전거로 바닥이 지속적으로 패이면 능선부의 지형이 변형되고, 습지 토양과 수분이 유실돼 육지화 등 습지훼손이 빨라진다”고 우려했다.
주민 감시원 부족에 따른 관리공백도 심각했다. 화엄늪과 신불산 습지 모두 주민 감시원이 한 명이다. 주 5일 근무제여서 매주 이틀은 감시원이 없으며 1, 2월에는 아예 근무를 하지 않는 체제다. 이 때문에 감시원이 없는 날에는 등산객 등이 습지에 마구 들어가더라도 전혀 제지를 받지 않는다. 박 회장은 “신불산 습지는 감시원이 없는 1, 2월에 밀렵꾼이 짐승을 쫓는다며 습지를 마구 침입하고 있다. 있더라도 한 명뿐이어서 탐방객 안내를 할 때는 출입구 통제가 안 되는 것은 물론 감시에도 공백이 생긴다”며 “최소한 2인 1조 운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자체·주민 협조 중요
습지보호를 위해서는 우선 습지보호구역 지정 권한을 가진 환경부와 산하 기관인 낙동강유역환경청 등의 보존 의지가 중요하다. 환경부는 17일 우포늪 훼손을 막는 완충지역을 두고자 산밖벌, 산밖벌 복원습지, 다부터벌 등 우포늪 주변 26만5000여㎡를 주변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습지보호구역으로 편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와 관련, 이인식 우포자연학교장은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우포늪 주남저수지 화포천을 연결하는 낙동강습지벨트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 경남도와 지자체가 참여하는 가운데 습지를 공공관리, 복원하고 문화 예술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포늪(2.3㎢) 주남저수지(5.95㎢) 화포천습지(1.3㎢)가 하나로 연결돼 국내 최대 내륙습지가 된다.
낙동강유역청도 본격적인 습지 복원작업에 돌입한다. 낙동강유역청 박효정 자연보전팀장은 “올해 부울경 습지보호지역 6곳에 대한 보전계획을 수립하고 내년부터 5년간 보전 및 복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대상은 고산습지인 사자평 신불산늪 무제치늪 화엄늪이며, 저층습지인 낙동강하구 화포천습지도 대상에 포함된다. 무제치늪은 특산종인 꼬마잠자리로 유명한 산지 습지다.
전문가는 습지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습지 식생 전문가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주로 평지에 발달하는 저지대 습지는 사람이 접근하기 쉬운 탓에 보호지역 출입과 훼손을 통제하고 주변 개발을 막는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습지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되레 건조화를 부추기는 등 습지를 망가뜨린다”며 “정밀한 생태계 조사를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습지 개발에 대한 주민 인식 개선과 협조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20년간 습지생태복원을 연구해온 이수동 경상대 조경학과 교수는 “대다수가 습지 자체를 개발되지 않은 빈 땅이라고 인식한다”며 “내부와 주변 경작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연꽃 등 수생식물을 심어 축제장으로 활용하는 등 개발 압력이 상당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호가치가 높거나 면적이 넓은 습지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시민단체 또는 대중 관심으로 인해 그나마 훼손이 지연되고 있지만 면적이 좁거나 외진 곳에 있는 습지는 관리 사각지대일 가능성이 크다”며 “인근 주민 또는 방문객이 습지를 함께 보호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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