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 도로에 대한 인식 변화, 도시 미관·상권에 영향을 미치다
해방 이후 서울은 인구의 폭발적 증가 한 복판에 있는 도시였다. 해방 직후 초기 해외에 거주하던 국민이 다수 귀국하면서 인구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전쟁과 복구를 거친 후 산업 발전과 함께 서울로의 인구 집중은 더욱 가속화됐다. 이 과정에서 상수와 하수, 주택 문제가 발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로 부족 현상도 같이 나타났다. 그리고 인구 증가에 더해 국내 생산 자동차의 보급과 소득수준 증가로 자가용을 포함한 자동차 통행량도 극심하게 늘었다. 이로 인해 이미 1970년에도 서울은 교통지옥이었다. 전쟁 이후 서울의 주로(主路) 간선이 전쟁 복구 시기부터 계속 정비되긴 했으나 불과 차량 10만 대에 불과했던 1970년에도 도심은 승용차와 버스, 트럭과 사람이 뒤섞여 극심한 혼잡이 있었다.
60년대 입체 도로의 등장
심각한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제시된 교통 대책이 입체 도로였다. 차로의 경우 고가도로, 보도의 경우 지하보도와 육교가 그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1967년 5월 청계천 복개와 고속 고가도로가 기획되었다. 이후 1960년대 서울역과 청계 등 13개, 1970년대 35개, 1980년대에 노량진, 약수 등 12개, 1990년대 선유도 등 29개의 고가도로가 건설됐다. 흥미로운 것은 서울에서는 고가도로가 대부분 강북에 건설됐다는 점이다(서울도시계획사 2권 참조).
강남의 경우에는 구획정리사업을 통해 개발되어서 격자형 도로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에 기존 건축물과 도로와 관계에서 오는 혼잡은 적었다. 따라서 고가도로를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주목할 점은 고가도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강북 지역 고가도로 설치 당시만 하더라도 고가도로는 도로의 정비, 발전된 토목 기술이 집약된 하나의 자랑거리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도시의 가로망과 교통 체계의 개선이 대대적으로 홍보됐다. 즉 고가도로가 이 시기에는 혁신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상권을 망치는 입체 도로 철거
그러나 도시의 미관이라든지 고가 인근 지역의 상권 형성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인식과 정반대였다. 고가 옆의 건물이나 상권 입장에서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큰 경우가 많다. 채광 부족과 소음 문제 등으로 통상 고가의 옆이나 아래 지역 그리고 건물은 부정적 영향을 받기 쉽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고가도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점차 커졌다. 거기에 교통신호 체계에 있어서의 기술과 경험도 증가했다. 이에 따라 1993년 삼각지 고가도로를 시작으로 고가도로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발달된 교통신호 체계를 바탕으로 고가도로를 철거해도 교통 정체가 일정 수준 이하로 통제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청계천 복원 계획에 따라 고가도로 철거가 선행되었다.
그러면 철거 결과는 어땠을까. 철거 과정에서 폐기물 처리 등 다양한 문제도 발생했지만 고가도로가 먼저 철거된 곳 주변 환경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고가로 인해 도로 좌·우측 상권이 단절되었던 곳은 서로 연결되고 활성화됐다. 삼일고가 철거 후 을지로5가 일대 상권은 활성화되고 부동산 가격도 상승했다. 원남고가 철거 후 창덕궁 등 궁 주변 환경도 개선됐다. 삼일고가의 철거로 을지로2가와 퇴계로 주변 상권이 좋아졌다. 일부 지역에서 먼저 고가가 철거되고 주변 환경이 좋아지는 것을 확인하자 아현고가 등 서울 강북 다수의 지역에서 고가를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늘었다. 결국 시간을 두고 그 외 다수의 고가도로가 철거됐다. 물론 여전히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는 고가도로도 있다. 서울로 7017의 경우엔 고가를 철거하는 대신 관광형 보행 산책로로 조성했다. 위치상 주변 상권으로의 파급 효과는 예상만큼 크진 않았지만 남대문쪽 회현 입구와 반대편 만리재 방향 양쪽으로는 맛집 등 핫 플레이스가 늘었고 소비 인구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기술력의 상징이자 자랑이었던 도시의 고가도로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반전을 일으켰다.
도로를 바라보는 관점과 인사이트
도시와 도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은 도로가 서 있는 땅과 주변의 땅, 결국 도시 전체의 미관과 상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 고가도로 다음의 이슈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 훗날의 일이지만 다음은 도심의 한가운데 있는 차량의 도로, 즉 고속도로가 아닐까. 즉 도심 고속도로의 지하화가 다음의 현실적 이슈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고속도로의 지하화 과정은 단순히 도로를 없애고 그 위에 공원이 되는 식으로만 진행되진 않는다. 기존 도로를 유지한 채로 지하에 추가 도로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속도로 공원화 같은 호재성 이슈만을 근거로 그 주변 부동산 투자를 결정해선 안 될 일이다. 그것은 10년 뒤, 20년 뒤에 당첨 여부를 알 수 있는 복권을 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도로를 둘러싼 하나의 인식 변화 과정의 일환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면도로의 상권 발달 트렌드
도로에 대한 선호와 관련해서는 최근의 중요한 변화도 한 가지 감지된다. 바로 이면도로다. 상권이나 입지에 있어서 이면도로보다는 큰길, 즉 대로에 대한 선호가 높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로에 있어야 차량이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눈에 잘 띄고 눈에 잘 보여야 거기서 장사할 때도 좋기 때문이다. 즉 대로변에 있는 땅이나 건물이 더 선호되는 것은 결국 가시성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이 최근에는 일부 변화하고 있다.
땅이나 건물을 빌려 써야 하는 사람들, 즉 임차인들의 입장이 바뀌고 있다. 대로보다 이면에 대한 선호가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은 바로 땅값의 급격한 상승 때문이다. 대로에 있어야 잘 보이고 잘 보여야 장사도 잘되겠지만, 중요 상권 대부분이 단기간에 급격히 높아진 땅값으로 인해 대로변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했다.
결국 장사가 잘될 걸 알더라도 상당수의 업종이 높아진 임대료를 계속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겼다. 결국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낮은 임대료를 찾아 이면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가게들이 이면으로 이동하면 사람들은 가게가 밀집한 이면으로 찾아 들어 간다. 결국 상권의 중심이 대로변에서 그 주변부 이면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시대에 따라 이런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다.
땅의 가치를 만드는 핵심 요소
어쨌든 땅의 가치는 법률과 제도에 의해 그 얼개가 형성되고 기초를 다진다. 그리고 그러한 기초 위에는 결국 사람들의 모임과 시선, 사람들의 선호가 상권을 만들고 가치를 더하게 된다. 땅 주변으로 사람들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도로든 땅이든 결국 사람들이 써야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소비 인구’라 한다. 유동 인구가 아닌 소비 인구가 결국 상권을 만든다. 그리고 그 소비 인구는 바로 도로를 따라 흐른다. 도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바로 부동산에 대한 공부, 부동산 투자에 대한 공부가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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