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도의 음악기행 <70>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들]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진 프란츠 크자베 볼프강 모차르트

안종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 2023. 4. 1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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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크자베 볼프강 모차르트의 실제 출판된 악보에는 작곡가로서 그의 이름이 아닌 아버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들(Wolfgang Amadeus Mozart Sohn)이라고 표기돼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퇴근길에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음악을 듣는다. 포근한 봄바람을 맞으며 필자의 연구실에서 걸어 나와 집으로 향하는 동안 조용히 귀 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하루의 긴장과 피로가 녹아내리는 것 같다. 지금 한 피아노 음악이 재생 중이다. 모차르트 같기도 아니, 쇼팽 같기도 아니, 슈베르트의 음악 같기도 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재생 화면을 보니 간만에 반가운 이름이다. 그의 이름은 프란츠 크자베 볼프강 모차르트(Franz Xaver Wolfgang Mozart)다.

안종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연주학 박사, 전 함부르크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그의 이름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란츠 크자베 볼프강 모차르트는 우리가 잘 아는 그 ‘모차르트’의 아들이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작곡가였다. 현재 그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많이 없을 것이다. 필자도 그의 곡이 연주되는 것을 아직 실제로 목격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들 모차르트’는 지금도 ‘아버지 모차르트’의 강력한 빛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 그런 것일까.

프란츠 크자베 볼프강 모차르트는 179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아버지 모차르트와 어머니 콘스탄체 사이에서 여섯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하지만 위에 형 카를 토마스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자녀는 모두 유년기를 넘기지 못했기에, 프란츠 크자베 볼프강은 차남으로 성장했다.

프란츠 크자베 볼프강 모차르트의 초상화. 사진 위키피디아

프란츠 크자베 볼프강이 태어난 지 4개월이 넘어갈 때 아버지 모차르트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기에 그는 생전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관심 속에 음악을 공부했고 아버지 모차르트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작곡가 훔멜(Hummel)에게도 가르침을 받았다.

그가 13세 되던 1805년 빈에서 열린 공개 연주회에 데뷔했는데, 거기서 아버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협연했고 또 자신이 직접 작곡한 칸타타를 연주하면서 당시 ‘모차르트의 재림’이라는 평과 함께 음악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의 재림’이라는 평은 음악사에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 음악가를 향한 극찬으로도 여겨진다. 실제로 훔멜도 또 이후에 멘델스존도 그들의 천재성으로 이러한 평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들 모차르트’에게도 이렇게 똑같은 극찬의 의미만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데뷔 연주를 필두로 그는 수많은 공개 연주와 음악 작품을 연달아 발표했다.

하지만 연주 포스터에도, 출판되는 그의 작품 표지에도 그의 이름은 없고 대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들’이라고 표기됐다. 사람들은 그를 프란츠 크자베 볼프강이라는 이름의 예술가로 대하기보다는 ‘모차르트의 아들’이라고만 인식했다(어쩌면 그렇게 원했을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에는 그가 유명세를 갖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음은 확실하나, 이후 아버지의 명성은 그에게 떨칠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됐다. 사람들은 그를 만나면 그의 이야기보다는 ‘모차르트의 아들’로서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기 원했고, 그의 작품은 늘 아버지 작품과 비교 대상이 됐다고 한다. 사교적이었고 외향적이었던 아버지 성격과는 달리 그는 내성적이고 또 자기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 그늘에서 괴로워하며 음악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거의 유년 시절부터 30대 중반까지의 것이 대부분이고 37세인 1828년부터 1839년까지, 11년 동안 작곡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성격과 더불어 그를 향한 대중의 시선이 창작의 열의를 꺾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문득 필자의 한 독일인 첼리스트 친구가 떠오른다. 이 친구도 현재 여러 대륙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신기하게도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인 로베르트 슈만과 성이 같다. 친구의 말로는 정말 아주 먼 혈연관계라고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필자도 그가 느끼는 슈만에 대해 무척 궁금해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냈었다. 이는 반드시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물며 서양 음악사상 최고의 천재로 칭송받는 모차르트의 아들에게 세상 사람은 그를 어떻게 바라보며 대했을까 짐작이 되기도 한다. 평생 쫓아다니는 아버지 모차르트의 명성에 그는 숨이 막히지 않았을까.

그의 음악도 동시대 음악인이었던 로베르트 슈만과 프란츠 슈베르트 같은 이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두 곡이 있으며 음악 스타일은 아버지 모차르트의 후기 작품 스타일에서 점점 초기 낭만주의로 향하는 과정에 있고, 유려한 선율과 비루투오소(virtuoso)한 진행, 다채로운 화성법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1844년 자신의 할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와 같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재산은 그의 소망에 따라 아버지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구하고 기리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재단에 기부됐다고 한다.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레오폴드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프란츠 크자베 모차르트:
콘라트 자넛(Konrad Jarnot)의 삼대 가곡

바리톤: 콘라트 자넛
피아노: 알렉산더 슈말츠(Alexander Schmalcz)제목 그대로 3대 모차르트의 가곡 작품을 들어볼 수 있다. 후기 바로크 양식의 레오폴드 모차르트부터 고전 양식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리고 초기 낭만주의의 프란츠 크자베 볼프강 모차르트 작품까지 음악 양식의 변천사뿐만 아니라 모차르트 가문에서 전해지는 음악의 풍미도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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