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앨버트 벵수산 뱅앤올룹슨 부회장 | “럭셔리 브랜드, 디지털을 두려워 말라”
지난해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51번째 럭셔리 하우스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컬렉션이 끝나고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제품은 발렌시아가가 자랑하는 신발도, 옷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발렌시아가와 뱅앤올룹슨(Bang & Olufsen)이 협력해 만든 ‘스피커 백(Speaker Bag)’이었다.
런웨이에서 모델들은 하나같이 핸드백에 스피커가 달린 가방을 들고 등장했다. 각 스피커 백에서는 쇼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두 브랜드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스피커 백은 발렌시아가 핸드백 역할을 하면서도 견고한 알루미늄 스피커가 들어가 뱅앤올룹슨이 자랑하는 최첨단 사운드 시스템을 뽐냈다.
“그 스피커를 내가 만들었다. 솔직히 럭셔리 브랜드들은 다른 브랜드들과 다른 노선을 걷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럭셔리 브랜드일수록 전통뿐 아니라 혁신을 강조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역량은 어떻게든 키워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3 유통산업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앨버트 벵수산(Albert Bensoussan) 뱅앤올룹슨 부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럭셔리 브랜드들은 온라인 판매, 혹은 인스타그램 마케팅 같은 디지털화에 상당한 관심이 있지만, 동시에 큰 두려움 또한 있다”며 “디지털화 때문에 오랜 소비자와 관계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지만, 소비자 가운데 80~90%는 온라인 마켓과 소셜미디어(SNS)에서 브랜드 정보를 먼저 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벵수산 부회장은 평생 럭셔리 브랜드 업계에서 일해온 세계적인 브랜딩 전문가다. 럭셔리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고가에 속하는 보석과 시계를 중심으로 경력을 쌓았다. 1984년 까르띠에 인터내셔널 와치앤주얼리 디렉터에 오른 이후, 2003년부터는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와치앤주얼리 디렉터로 일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는 LVMH의 맞수 케어링그룹에서 와치앤주얼리 대표이사를 지냈고, 2020년부터는 럭셔리 오디오 기기 뱅앤올룹슨에서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다음은 벵수산 부회장과 일문일답.
주요 럭셔리 브랜드마다 판매 전략은 어떻게 다른가.
“먼저 럭셔리가 무엇인지 다시 정리해보자. 각자만의 답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독특함과 고유함이 있어야 한다. 독특함이란 희소성에서 온다. 이 희소성을 어떻게 유지하는지가 핵심이다. 샤넬(Chanel)은 일부 화장품을 온라인으로 팔지만 보석과 시계는 온라인에서 팔지 않는다. 에르메스 같은 럭셔리 브랜드도 비슷한 온라인 전략을 펼친다.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판매 전략을 펼쳐야 희소성과 고유 소비자층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고가 제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매장으로 달려가는 ‘오픈런(open run)’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럭셔리 제품 유통 구조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맞다. 여전히 루이비통은 전 세계에 매장이 500개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도 이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전처럼 오프라인을 통해 단골 소비자와 무형의 관계를 쌓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그보다 디지털화를 통해 구체적인 소비자 데이터를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프라인으로 대면 판매를 하면 SNS 팔로우 브랜드와 방문한 페이지 정보, 사고 싶어 찜해놓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다. 이런 정보는 온라인상에서 이미 보편화된 디지털 툴(도구)을 이용해 너무 쉽게 모을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일부 브랜드는 수백만~수천만원에 달하는 물건을 온라인에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판매할 수 있는지 여부를 의심한다.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 대부분이 이제 제품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한다. 브랜드 역사와 전통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대면 판매를 해야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브랜드의 영혼은 수십 년 동안 해당 브랜드에 헌신해 온 유명 디자이너, 디자인 팀, 장인에게서 나온다. 판매 채널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온라인에서 얻은 정보를 제대로 활용해 오프라인 대면 판매에 활용할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오프라인상에서 판매원을 보고 말하기 어려운 제품에 대해 표출하는 진심 어린 의견을 확보할 수 있다. 매장이 문을 닫은 시간에도 24시간 내내 지속적으로 소비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고가의 브랜드를 산다는 감정적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클릭 몇 번으로 끝나는 온라인 구매는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어렵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 활용을 더 강조하고 싶다.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는 남들과 똑같은 정보를 받으면 해당 브랜드나 제품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럭셔리 브랜드가 소비자 유치를 잘하려면 이런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해야 한다. 세세하게 소비자 데이터를 쌓으면 럭셔리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인 개인 맞춤화를 쉽게 할 수 있다. 여러 소매(retail) 채널에서 말하는 ‘옴니 데이터(omni-data·온·오프라인 통합 데이터)’를 구축하기 좋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단골손님의 정보를 알아서 파악했다. 해당 직원이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면, 남아있는 정보는 단골손님이 어떤 제품을 언제 구매했는지 정도였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 디지털 데이터를 쌓으면, 이 정보를 기반으로 각 소비자에게 맞춤화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상호보완적 관계를 쌓을 최후의 개척지다. 여기에 디지털 공간에서는 가상현실(VR)이나 3D,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을 접목하기도 좋다. 이렇게 관련 기술이 빨리 발전하는 지금이야말로 럭셔리 브랜드들이 디지털화를 할 만한 좋은 기회다.”
판매 채널을 디지털화하는 데 성공해도 브랜드가 영속하려면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을 것 같다. 지속 가능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 브랜드 자체 측면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한가.
“집중(focus)해야 한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미 오랫동안 쌓아온 정교한 브랜드 전략이 있다. 시기에 맞춰 유행이나 소비자 선호도에 따라 경영진이나 디자이너가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브랜드가 유기적으로 성장하려면 본업에 있어서 상징적인 컬렉션만큼은 집중하고, 바뀌어선 안 된다. 율리스 나르댕(Ulysse Nardin)이나 지라드 페러고(Girard-Perregaux) 같은 시계 브랜드는 시계에 집중했기 때문에 지금 위치를 차지했다. 뱅앤올룹슨도 음향 기기 하나에 몰두한 결과, 세계 최고 자리에 올랐다. 본업이 아닌 분야에서는 뱅앤올룹슨이 발렌시아가와 협력해 만든 스피커 백처럼 해당 분야의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협력하면 된다. 단순해 보이는 카테고리 한 곳에 초점을 맞춰야만, 그 브랜드가 가진 개성이 더 뚜렷해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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