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미국 역사상 첫 기소된 전직 대통령 트럼프 | 성관계 입막음 기소가 박해?…‘법정 드마라’로 차기 대권 노려

김우영 기자 2023. 4. 1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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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월 4일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혐의 인정 여부를 밝히는 기소 인부 절차를 밟고 있다. 사진 AP연합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월 4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피고인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그는 2016년 대선 직전 자신과 혼외 성관계 사실을 폭로하려 했던 전직 포르노 배우의 입을 막기 위해 거액의 돈을 지급하고 이 과정에서 34건의 기업 문건을 위조한 혐의를 받는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욕 맨해튼 지방 검찰에 체포된 상태에서 법원의 ‘기소 인부(認否) 절차’에 출석했다.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기소 내용을 고지하고, 피고인으로부터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 또는 부인 의사를 확인하는 자리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50여 분간 이어진 기소 인부 절차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기소 인부 절차를 진행한 후안 머천 판사는 8개월 뒤인 12월 4일 첫 공판을 열고, 검찰과 트럼프 측의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실제 재판이 내년에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정권 교체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사법 처리되곤 했던 한국을 언급하는 현지 언론도 적지 않다. NYT는 “트럼프가 한국의 박근혜(전 대통령),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전 총리)의 반열에 올랐다”고 전했다.

앨빈 브래그 뉴욕 맨해튼 지검장. 사진 블룸버그

검찰 “트럼프 ‘성 추문 입막음 돈’ 최소 3건”

초유의 미 전직 대통령 기소를 이끌어낸 앨빈 브래그 뉴욕 맨해튼 지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34개 혐의는 모두 기업 문서 조작과 관련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가 2016년 대선 직전 사생활 관련 폭로를 막기 위해 돈을 뿌린 사실이 최소 3건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공개된 공소장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시절 전직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본명 스테파니 클리퍼드)가 자신과의 혼외 성관계 사실을 폭로하려고 하자,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통해 입막음 대가로 13만달러(약 1억7014만원)를 전달했다. 이 밖에도 트럼프와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한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 모델 캐런 맥두걸에게 15만달러(약 1억9632만원)를, ‘트럼프에게 혼외 자녀가 있다’고 주장한 트럼프타워의 도어맨에게 3만달러(약 3926만원)를 지급했다고 한다.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는 변호사 코언을 통해 대니얼스에게 지급된 13만달러의 성격을 감추기 위해 34건의 트럼프그룹 문건을 위조한 의혹을 다루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코언에게 1년 가까이 매달 수표로 나눠 이 돈을 상환했는데, 회사 장부에 ‘법률 자문료’로 허위 기재했다는 것이다. 뉴욕주 법에 따르면 기업 문건 위조 자체는 경범죄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선 직전 불리한 정보를 감추기 위해 이뤄진 불법 행위는 중범죄라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맥두걸과 도어맨에게 입막음 돈을 지급한 사실은 기소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로 재판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다만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 등 선거 관련 혐의로 기소하진 않았다. 현지 언론은 연방 선거인 대선에 출마했던 그를 주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트럼프, 공화당 차기 대선 지지율 1위 등극

미국은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전직 대통령에 대해 형사 기소한 사례가 없다.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이를 금기시해왔다. 그런데 이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로 이 전통이 깨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정치적 반격의 계기로 삼고 있다. 정치 탄압에 맞서는 ‘순교자’ 이미지를 내세워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의 법정 드라마가 시작됐다고 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으로 귀가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자신을 기소한 것이 자신의 대선 출마와 당선을 막기 위한 ‘정치적 수사’이자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극단적인 좌익 미치광이들이 사법 당국을 이용해 우리 선거에 개입하려고 하는데,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야당 공화당에서 독보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정치 전문지 ‘더힐’에 따르면, 야휴뉴스-유고브가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52%로 1위를 기록했다. 경쟁자인 플로리다주 주지사 론 디샌티스(21%)를 크게 앞섰다.

특히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양자 대결에선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다. 하버드대 미국정치학센터(CAPS)와 여론 조사 회사 해리스폴이 지난 2월 더힐에 제공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46%로 조 바이든(41%) 대통령을 앞섰다. 3월 23∼27일 실시된 퀴니피악대 여론 조사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48%로 트럼프(46%) 전 대통령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교도소 갈 가능성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작은 것으로 전해진다. AFP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과가 없는 만큼, 유죄가 확정돼도 실형을 선고받을지 미지수라고 전했다. 아울러 미 헌법상 유죄 판결을 받아도 대선 출마에는 지장이 없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운동을 지속할 수 있고, 당내 지지율 1위 자리를 유지한다면 공화당 예비 경선 승리도 노릴 수 있다.

변수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6일 벌어진 의회 폭동 사건을 선동했다는 혐의로도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미국 수정헌법 14조에 따르면 내란 또는 내란에 관여한 인물은 선출직 공직자 자격이 박탈된다. 아울러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결과를 뒤집으라고 종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FT에 따르면 해당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진행 중인 조지아주 애틀랜타 풀턴카운티 지검이 조만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이자 미시간 동부 지방 검사를 지낸 바버라 매퀘이드는 FT에 “해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 기밀문서를 무단 반출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NYT는 “(이번 맨해튼 지검의 기소로) 트럼프의 또 다른 의혹을 수사하는 수사팀이 부담을 덜었다”고 전했다.

Plus Point
음모론 꺼내 든 트럼프 “조지 소로스가 배후”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사진 블룸버그

“조시 소로스가 선택하고 후원한 앨빈 브래그 지검장은 수치스러운 인물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소가 결정된 3월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자신을 기소한 브래그 지검장이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헤지펀드의 대부인 소로스 회장이 이번 기소의 배후라는 음모론을 꺼내 든 것이다. 그는 앞서 3월 20일에도 브래그 지검장이 소로스 회장에게 100만달러(13억880만원)를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로스 회장에 대한 음모론을 제시한 것은 그가 진보 진영의 거물 후원자여서다. 실제로 앨빈 브래그 지검장은 민주당 소속이다.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철저한 시장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인 소로스 회장은 지난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가장 많은 정치 자금을 기부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다만 WP는 소로스가 브래그 지검장에게 직접 자금을 지원한 적이 없으며, 브래그 지검장이나 다른 진보적 검사 후보를 돕는 단체에 기부했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소로스 측도 브래그 지검장과 지금까지 서로 만나거나 대화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로스 회장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고교 시절 성폭력 미수 의혹 파문에 휘말린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 인준에 반발한 시위대를 향해 “소로스 등에게 돈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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