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한국술 탐방 | 경북 문경의 ‘두술도가’ 김두수·이재희 공동 대표] “막걸리도 블렌딩하면 맛이 훨씬 좋아져요”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2023. 4. 1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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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술도가에서 만든 희양산막걸리 병들. 전미화 작가 작품(그림)을 라벨로 사용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위스키나 고급 와인처럼 블렌딩 과정을 거쳐서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이 있다. 블렌딩은 커피, 위스키, 와인 같은 음료의 다양한 맛을 내기 위해 여러 가지 원료를 섞어 합하는 제조 기법을 말한다. 경북 문경의 양조장 ‘두술도가’가 만드는 희양산막걸리가 그렇다. 희양산막걸리는 멥쌀로 막걸리를 빚어, 발효와 숙성 후 물을 일부 섞어 알코올 도수를 맞추는 제성(양조장에서 술을 빚을 때, 물을 추가해 도수를 맞추거나 감미하는 등의 마지막 단계) 과정에서 각기 맛이 조금씩 다른 여러 통의 막걸리를 섞은 뒤에 병입한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서울대 독어독문학 학·석사, 전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장, ‘한국술열전’ 저자

블렌딩 막거리를 만드는 두술도가 김두수 대표의 얘기다.

“막걸리의 매력이자 단점은 빚을 때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똑같은 재료로, 같은 시기에 발효를 거친 막걸리도 발효 탱크마다 맛이 다르다.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이런 막걸리의 특성(맛의 들쑥날쑥함)을 이해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맛의 일관성은 상업 양조의 기본이다. 그래서 양조장 초기부터 여러 통의 막걸리를 섞어(블렌딩), 맛의 일관성을 가급적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맛이 도드라진 막걸리, 신맛이 강한 막걸리, 또 쓴맛이 튀는 막걸리를 섞어 ‘다양한 맛의 균형’을 잡는다.”

두술도가의 블렌딩 작업은 발효, 숙성을 거쳐 최종 제성 단계에서 이뤄진다. 같은 원료, 같은 시기에 빚은 막걸리라도 향과 맛이 약간씩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발효 탱크마다 막걸리 맛을 본 뒤에 섞는 비율을 정해 블렌딩한 다음에 술병에 담는다. 대개는 2개 통의 막걸리를 섞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3개 통 이상의 막걸리를 블렌딩하기도 한다.

“희양산막걸리가 추구하는 맛은 단맛, 신맛, 쓴맛의 조화다. 처음 한 모금 입안에 넣었을 때, 가장 먼저 산미(신맛)가 느껴지고, 입에 머물고 있으면 점차 단맛이 올라온다. 그리고 술을 삼키고 나면 기분 좋은 쓴맛이 깔끔하게 입안을 정리해, 다음 잔을 부르는 술이 좋은 술이라고 생각한다.”

두술도가 공동 대표인 이재희(왼쪽), 김두수 부부. 사진 박순욱 기자

두술도가 양조장은 ‘부부 양조장’이다. 김두수, 이재희 부부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나 결혼 후 귀국해, 연고도 없는 경북 문경에 둥지를 튼 것은 2005년이다. 어릴 적에도 경험 못 해본, 아궁이에 나무로 불 피우면서 10여 년간 농사짓던 ‘초보 귀촌 부부’가 술 양조로 눈을 돌린 이유는 쌀이 남아돌아서였다. 2019년에 설립한 두술도가 제품은 현재 세 가지다. ‘희양산막걸리’ 9도, 15도 그리고 ‘오미자씨’ 막걸리다. 오미자씨는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를 부재료로 넣은 과일 막걸리로 봄, 여름에만 판매하는 계절 막걸리다. 희양산막걸리 9도는 여느 막걸리와 제조 방법이 다르다. 한마디로 ‘슬로 푸드’다. 발효에만 3~4주를 보낸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저온 숙성실에서 잠을 재운다. 그리고 여러 발효 통의 막걸리를 섞고(블렌딩) 물을 넣어 알코올 도수를 9도로 맞춘다. 그러고 나서도 곧바로 병에 담지 않는다. ‘제성 후 숙성’을 또 한 달 정도 거친 다음에야 병에 넣어 세상에 내보낸다. 하지만 물을 거의 타지 않는 희양산막걸리 15도는 제성 후 곧바로 병입해서 출시한다. 희석하지 않은 막걸리 원주의 진한 맛을 그대로 살려, ‘제성 후 숙성’의 필요가 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통의 막걸리를 섞는 블렌딩 과정은 희양산막걸리 9도, 15도 둘 다 마찬가지다. 두술도가는 다른 양조장에서 하지 않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블렌딩 회의’다. 발효와 숙성을 끝낸 술을 통마다 일일이 부부가 맛본 뒤에 세부적인 블렌딩 계획을 짠다.

“우리가 추구하는 술은 신맛과 단맛 그리고 쓴맛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술인데, 이 세 가지 맛을 균형 있게 충족시키는 술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각기 단맛이 도드라진 막걸리, 신맛이 강한 술, 쓴맛이 튀는 막걸리를 블렌딩해서 술을 완성한다. 와인이나 위스키에 흔한 블렌딩을 막걸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전체적으로 희양산막걸리는 드라이한 맛을 추구한다. 그래서 드라이한 맛이 강한 술 비중이, 단 술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전통주 전문가들의 희양산막걸리(9도)에 대한 평가는 후한 편이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희양산막걸리는 쌀이 당화되며 나오는 자연스러운 곡물의 단맛을 베이스로 술꾼들이 좋아할 산미가 살짝 도드라지며 함께 조화를 이룬다”고 했다. 류인수 한국가양주연구소 소장은 “신선한 발효 향에 곡물의 고소한 향이 함께 섞여 올라온다”며 “술의 향과 맛이 일치하는 술이 드문데, 희양산막걸리는 향과 맛이 일치하는 매우 정직한 술”이라고 평가했다.

봄, 여름 한정 상품인 오미자씨 막걸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는 가을 초입이 수확 시기다. 두술도가는 생오미자를 직접 짜서, 냉동 보관해두었다가 봄과 여름철에 빚는 희양산막걸리에 생오미자즙을 넣어 오미자씨를 완성한다. 감미료도 일절 넣지 않는다. 알코올 도수는 7.8도다. 희양산막걸리(9도·15도)보다는 도수가 낮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보니, 오미자씨를 만드는 데도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우선 생오미자즙을 시장에서 구하기가 불가능했다. 오미자는 신맛, 짠맛, 쓴맛 등이 도드라져서 생즙 상태로는 마시기가 어렵다. 포도즙, 사과즙처럼 쉽게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생오미자즙을 만들어 파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생오미자를 가을 수확철에 장만해, 부부가 직접 즙을 짜서 보관했다가 이듬해 봄, 여름에 사용한다.

희양산막걸리의 또 다른 특징은 라벨 그림이다. 희양산막걸리에는 그림책에서나 볼 것 같은 그림이 술병 라벨에 그려져 있다. ‘으라차차’ 로봇 그림, 민화 스타일의 귀여운 호랑이, 고양이도 등장한다. 희양산막걸리 브랜드는 모르더라도 ‘호랑이 라벨이 그려진 막걸리’로 기억하는 소비자가 의외로 많다. 라벨 그림은 전미화 작가 작품이다. 이재희 대표 설명이다. “기존 막걸리 대부분이 라벨은 특별한 게 없다. 우리 막걸리가 유명하지도 않지만, 밋밋한 막걸리 라벨로는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병 라벨을 통해 그림 전시회를 해보자’였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우리 막걸리를 라벨로 기억하는 소비자가 꽤 많다. 특히 ‘호랑이 라벨은 희양산막걸리에 매우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다. 몇 달마다 그림을 교체하는데, 점점 교체 시기가 늦춰질 정도로 반응이 좋다. 작가에게는 매출액의 일부를 인세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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