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양대 기둥' 프랑스·독일, 연일 불협화음… "EU가 흔들린다"
"무역·전쟁·기후·EU 과제 쌓였는데..." 우려 커져
독일과 프랑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독일 정부는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합의한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목표에 어깃장을 놨고, 프랑스 정상은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국·중국 간 갈등을 거론하며 "EU가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두 이슈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상대방에 대해 가장 날 선 비판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왜 독자 행보를 하느냐"는 이유였다. 올해 우호관계 60주년을 맞은 게 무색할 정도로 양국이 삐걱대고 있는 셈이다.
두 나라가 유럽의 가치나 이익보다 자국 상황과 득실을 신경 쓰는 건 내부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연립정부(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 내 주도권 다툼으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여론의 반대에도 연금개혁을 강행한 탓에 자국 내 정치적 입지가 계속 좁아지고 있다.
문제는 독일과 프랑스가 EU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라는 점이다. 두 나라가 '유럽의 통합'을 등한시하면 EU 의사결정이 더뎌지고, 격변하는 외부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도 없다. EU의 힘은 회원국이 '공통의 질서'를 추구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관철시키는 데서 나온다는 점에서, 양국 간 긴장 관계가 EU 전체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U 합의 팽개친 독일… 비판 앞장선 프랑스
내연기관 차량 정책으로 최근 양국은 얼굴을 붉혔다. 미국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달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자'는 EU 합의문에 서명하기 직전 "이퓨얼(e-fuel)을 쓰는 내연기관 차는 계속 팔자"고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퓨얼은 '대기에서 포집한 탄소를 수소와 합성해 만드는 연료'이므로 친환경 연료라는 게 독일 논리였다. 그러나 친기업 성향 자유민주당이 '독일 자동차 산업을 망가뜨릴 순 없다'고 주장하면서 입장을 번복했다는 게 중론이다.
프랑스는 "독일이 반란을 주도했다"(클레망 본 교통부 장관)고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설득도 먹히지 않았다. 이 사안과 관련, 양국 간 어색함은 가시지 않고 있다.
친원전 프랑스, 탈원전 독일… EU에 입김 안간힘
원자력 발전도 갈등의 중심에 있다. 친원전 국가인 프랑스는 "원전을 활용해 생산된 '핑크 수소'는 청정 수소"라는 입장이지만, 탈원전 국가인 독일은 동의하지 않는다. 양국은 지난해 7월 EU의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원전 포함 여부를 두고 대립각을 세웠다.
정반대인 자국의 에너지 정책을 EU 정책에 각각 밀어 넣으려 하다 보니 발생하는 갈등이다. 두 사안 모두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독일로선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마크롱 "외교 독자노선" 발언하자… 독 외무 '거리 두기'
최근 대만 문제로 신경전도 일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 국빈 방문이 끝날 무렵인 7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거론하며 "(유럽이)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 '중립적 태도를 취하자'는 뜻이지만, 중국의 편을 드는 듯한 뉘앙스도 감지됐다.
그러자 13일 중국을 찾은 안나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은 "대만을 둘러싼 긴장에 무관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 발언을 겨냥한 비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양국 협력은 충분조건 아닌 필요조건" 우려들
유럽 전문가들은 양국 긴장이 유럽 전체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독자 노선을 걷거나 갈등 조율과 관련한 의사결정이 더뎌지면, 미국·중국의 보호 무역 및 무역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위기 등 중대 사안에서 EU가 주도권을 잡기 힘들어지는 탓이다. 미국 기반 정치컨설팅 회사 유라시아그룹의 무즈타바라반 상무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내년 유럽의회 선거 후 EU가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프랑스와 독일 간 조율 없이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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