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탐구 <33> 일본 K푸드 붐 원조 주역에게 듣다] 한식당 백제·고려무역재팬, 맛·고객 신뢰로 日 외식 시장서 성공
3월 하순 일본의 오사카, 고베, 교토를 다니며 ‘K푸드 붐’을 실감했다. 코리아타운과 상점가의 슈퍼, 김치와 식자재 매장, 치킨, 불고기 식당 앞은 일본인들로 북적였다. 제4차로 불리는 현재 한류 붐은 한국 드라마와 한국 먹거리를 중심으로 인기가 높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까지 재일교포와 한국 기업인들이 오랜 기간 구슬땀을 흘렸다. 한식당 ‘백제(百濟·쿠다라)’와 고려무역재팬은 한류 붐이 불기 훨씬 전인 1980년대 말부터 일본 시장을 개척해온 선구자들이다. 이들은 일본 외식 비즈니스 성공 요인으로 ‘맛’과 ‘고객 신뢰’를 공통으로 꼽았다.
영남 출신이 한식당 ‘백제’ 만든 이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한국 요리 보급에 더 기여하고 싶어요.” 3월 16일 고베 시내 고급 아파트 자택에서 만난 김휘자(83) 백제 대표는 아직도 꿈 많은 소녀 같았다. 김 대표는 간사이(서부) 지방에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재일교포 여성 기업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사태 초반인 2020년 초까지 운영한 ‘백제 고베시청점’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하기 어려울 만큼 인기를 모았다. 기업인이나 관료 등 지역 유지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급 한식당으로 자리매김했다.
34년 전 고베 시내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에서 출발한 백제는 신선한 한국 식자재와 어머니의 손맛이 알려지며 좋은 평판을 얻었다. 고베시청점 개점 당시 한국 음식 특유의 강한 냄새를 이유로 일부 공무원의 반대도 있었으나 시청 고위층은 물론 지역 여론에 힘입어 2010년 입점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한국을 오가며 최신 한식 트렌드를 반영, 다양한 한국 요리를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 맛보기 어려웠던 전복죽이나 해파리무침을 내놔 한식의 깊은 맛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10가지 나물과 잡채, 메인 요리로 구성된 ‘백제 한정식 코스’가 대표 메뉴였다.
김 대표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김치 등 한국산 식품을 들여와 백화점에 납품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1989년 한식당 백제를 시작으로 한국식 수프 전문점인 ‘수프보우 쿠다라(すーぷ房くだら)’, 김치 및 야채 전문점 ‘한채백제(韓菜百濟)’ 등을 잇달아 열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고베시청 24층 전망대에 매장을 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1940년 일본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재일교포 2세다. 교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고베로 이사했다. 부모 고향은 경상남도 삼천포다. 영남에 뿌리를 둔 김 대표가 한식당 이름으로 ‘백제’를 내세운 사연이 흥미롭다. “한국 음식은 역시 호남이 최고지요. 식자재는 물론 손맛이 뛰어납니다.” 그는 영호남 지역 통합에도 기여하고, 한국 음식의 정통 맛을 내겠다는 욕심에 백제로 상호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백제가 인기를 끈 이유를 묻자 “음식은 ‘맛’이 생명”이라며 “일본 소비자는 깔끔한 걸 선호하기 때문에 식자재는 신선하게, 매장은 청결하게 하는 것을 늘 염두에 뒀다”고 했다.
70대까지만 해도 그는 80세가 되면 비즈니스에서 떠나 노래와 춤을 배우며 여생을 보내는 꿈을 꿨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고베시청 매장 문을 닫고 쉬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일본에서 한류 붐이 불고 있어 일본 요리의 아름다움을 접목한 새로운 한식과 식자재를 보급하기로 했다. 기회가 되면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영화로 만들어 보는 꿈을 가지고 있다.
고려무역, 홍삼 팔아 35년 장수 기업 된 사연
오사카 주오구에 위치한 고려무역재팬 본사 1층에는 치맥점이 있다. 이 회사의 ‘CHI-MEK’ 직영 1호점이다. 치킨과 맥주는 물론 돌솥비빔밥, 순두부찌개, 칼국수도 판다. 일본 시장에서 전개하는 세 번째 외식 브랜드다. 고려무역재팬의 영업을 총괄하는 김창오 상무(영업본부장)와 박회준 마케팅부장을 본사에서 만났다. 박 부장은 박양기 대표의 아들이다. 서울 중앙대로 유학해 경영학을 전공한 뒤 일본에서 가업을 잇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해 오사카 한국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 한류 붐 확산에 힘을 쏟고 있다.
고려무역재팬은 1986년 한국 정부 산하 기관이 100% 출자한 ㈜고려무역의 오사카 현지법인으로 출발했다. 한국 중소기업 제품의 일본 내 홍보와 판매를 위해 코리아 플라자(한국 상품 전시매장)를 설립했고, 1989년 회사명을 고려무역재팬으로 변경했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경영난에 몰리자 자본 민영화를 통해 민간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박양기 대표는 1990년대 초 일본 주재원 근무를 시작한 뒤 민영화를 계기로 초대 대표로 취임했다. 지난해 말 기준, 회사 직원은 860여 명(파트타임 포함)이며, 매출은 400억원 정도다.
‘고려 홍삼차’ ‘홍삼력’ ‘고려 인삼정’ 등이 주력 제품이다. 경기도 일산에 자체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일본 홍삼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이 회사의 홍삼 제품은 일본 홈쇼핑 TV에서 시간당 최고 판매 기록을 갖고 있다. 김 상무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자원을 두 개만 꼽으라면, 사람과 홍삼”이라며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건강식품이 홍삼”이라고 예찬론을 펼쳤다.
한국 건강식품을 수입, 판매해온 고려무역은 2006년 한국 요리 ‘bibim’ 브랜드로 직영점을 열고 외식업에 진출했다. 돌솥비빔밥과 순두부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다. 이어 2015년에 닭요리 전문점 ‘꼬끼오’를 론칭했다. 이들 매장이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인기를 얻자 2020년 9월 ‘CHI-MEK’을 론칭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추가 출점을 못 했다. 올 들어 다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고려무역재팬은 ‘음식 맛’과 ‘소비자 신의’를 가장 중시한다.
박회준 마케팅부장은 “일본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기까진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신뢰를 얻으면 오래가는 특성이 있다”며 “소비자의 ‘신의’를 얻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려무역의 중장기 목표는 상장회사가 되는 것이다. 2025년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환경 사업 등 신규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다.
Plus Point
“日 시장 진출 K푸드 과당 경쟁 지양”
K푸드가 일본 소비 시장에 뿌리를 내리려면, 식품과 외식업계에서 안정적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2000년대 초반 한류 붐 당시 도쿄와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에는 삼겹살 같은 단일 카테고리에 너무 많은 점포가 몰려 가격 경쟁에 돌입했고, 공멸한 경험이 있다. 일시적인 유행에 편승한 동일 카테고리의 판매와 가격 경쟁을 피하고, 상호 간에 차별적인 점포 및 상품 전략을 구사해 안정된 소비자층을 확보해야 한다.
밸류체인 구축도 시급하다. 한국에서 수입된 식품이 신선한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일본의 복잡하고 긴 식품 유통 경로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시장 장악력이 큰 무역상사 및 식품 도매 기업, 직거래가 가능한 소매 기업과의 신뢰 관계 구축도 중요하다. 식품의 신선도를 중시하는 일본 소비자의 니즈를 감안, 일본에 자체 식품 생산공장을 만들거나 소매 기업의 PB 상품 제조 파트너의 길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의 테이크아웃 시장 확대에 맞춰 배달 플랫폼 기업과의 협업, 테이크아웃에 적합한 상품 개발도 추천한다. 소셜미디어(SNS)에 정통한 젊은 인플루언서와의 관계 구축도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은 K푸드의 원산지 강조 전략을 통해 K푸드 브랜드의 주도권을 계속 확보해야 할 것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