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글리츠 교수가 경제자문위원장에 임명됐더라면

한겨레 2023. 4. 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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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11화 경제학자 스티글리츠

장하준 교수 설득에

당사자는 수락했지만

‘국가 간 이익충돌 우려’ 등 이유

인수위·청 참모진 대부분 반대

스티글리츠 교수

이후에도 한국에 애정과 관심

투자세액공제 아이디어 주기도

미국식 NEC 신설 검토했지만

경제부총리제 고려해 두지 않기로

경제분야 전횡·월권의 상징인

경제수석은 폐지하고

경제보좌관 신설해 조윤제 임명

2004년 5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미 컬럼비아대학)와 서울에서 만나 대담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인수위가 끝나가던 2003년 2월17일(월) 아침 경제1분과 정태인 위원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현 런던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에게 노무현 정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승낙받았다는 얘기였다.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린 경제학자다.

스티글리츠는 어떤 사람인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여러 대학을 거쳐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으며,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다. 세계은행 연구담당 부총재 시절(1997~2000)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 기념 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해 기조강연하는 걸 들을 기회가 있었다. 경제학의 다방면에 걸쳐 학술적으로 기여했으며, 무엇보다 진보적 경제학자라는 점이 돋보인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보수파가 많은데,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폴 크루그먼은 예외다.

왼쪽부터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지금까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 대다수는 시장만능주의를 설파하는 시카고학파에 속한다. 이 학파의 총수라고 할 수 있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1980년에 쓴 <선택의 자유>는 한국에도 번역돼 많은 독자를 얻었는데, 특히 큰 감화를 받고 자유, 자유를 외치는 애독자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대통령 취임사에 ‘자유’라는 단어가 35회 등장한다). 이 책은 경제학 문외한은 쉬 빠져들 수 있어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한 나라 경제를 이끌어가는 두개 기구인 시장과 정부 가운데 전자를 강조하는 게 시카고학파다. 시카고학파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한때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였고 노벨경제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宇澤弘文)와 내가 나눈 2009년 <한겨레> 대담을 읽어보기 바란다.

시카고학파의 대척점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게 케인스주의인데, 매사추세츠공대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이 그 총수로 불린다. 프리드먼과 새뮤얼슨 모두 미 행정부에 참가해 일했고, 시사 문제에 관해 수시로 신문, 잡지에 기고하는 현실참여파 학자(폴리페서)다. 두 사람은 사사건건 생각이 달라 평생을 싸운 라이벌이었다.

지리적으로 보면 미 대륙 중앙에 있는 대학들은 시카고대 영향을 받아 시장만능주의 학풍이 강하다. 반면, 양쪽 해안에 가까운 대학들에는 정부 개입을 찬성하는 케인스주의자가 많은데 동부의 하버드, 매사추세츠공대, 예일, 프린스턴, 서부의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등이 대표적이다.

대학 학풍은 연구, 강의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경제학의 양대 학파라고 하지만 역대 노벨경제학상은 시카고학파 쪽이 싹쓸이하다시피 해왔다. 또 이들이 심사위원에 들어가니 동류 재생산이 이뤄진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한국 경제학자들도 시카고학파의 세례를 받고 돌아온 경우가 많다. 심지어 관료들도 그렇다. 정부에서 일하면서 스스로 정부의 역할을 무시하고 시장 만세를 외치니 자기모순이다.

2003년 2월26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한 조지프 스티글리츠(맨 왼쪽) 미 컬럼비아대 교수 등 미국 쪽 인사들을 접견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세계 경제학계의 거물인 스티글리츠 교수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맡겠다고 한다는 희소식을 바로 그날 인수위 간사회의에 보고했다. 당연히 통과될 줄 알았다. 그런데 국가 간 이익충돌 등을 이유로 6명 간사 중 4명이 반대하고 찬성은 한명도 없었다. 임채정 위원장은 간사들의 토론을 지켜본 뒤 앞으로 연구해보자며 보류했다.

며칠 뒤 스티글리츠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축하객으로 한국에 왔다.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2월24일 오후 3시 스티글리츠, 장하준 교수와 함께 삼청동 대통령 안가로 갔다. 10·26 사건이 일어났던 궁정동 안가를 김영삼 대통령이 말끔히 철거한 뒤 남은 몇채 안되는 안가 가운데 하나 같았다. 안가라야 별난 곳은 아니고 그저 평범한 작은 한옥이었다. 거기서 당선자까지 넷이서 한시간 동안 환담을 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지지하는 등 진보적 견해를 피력했다.

미국 정부 최고 경제정책심의기구인 국가경제위원회(NEC) 모델에 관해서도 논의했다. 그 무렵 문희상 비서실장이 내게 국가경제위원회에 관해 물어온 적이 있다. 당시 일각에서 국가경제위원회 신설을 제안했지만 당선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 좌장 역할을 하는데 구태여 둘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었다. 반면 외교안보 쪽은 좌장이 없기에 청와대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신설해 외교안보 사령탑 역할을 맡겼다.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 조직의 큰 변화 중 하나는 경제수석 폐지였다. 대신 보완의 의미로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신설됐다. 경제수석이 없어진 이유는 과거 경제수석이 재벌과 장관들 위에 군림하면서 때때로 월권, 전횡 시비를 일으켰기 때문으로 추측한다(내가 일하던 정책실장실이 과거 경제수석실이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재벌들이 경제수석을 만나려고 수석실 앞 복도 의자에 줄지어 앉아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신설된 경제보좌관의 역할이 궁금해 그날 안가에서 당선자에게 물었더니 한국경제 대외 홍보와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 두가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 뒤 초대 대통령 경제보좌관에 나와는 20대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서강대 조윤제 교수가 임명됐다.

조윤제 경제보좌관과도 스티글리츠 자문위원장 문제를 의논했는데, 진보적인 스티글리츠 교수는 보수적인 뉴욕 월가와 사이가 나빠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주위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해볼까 하다가 접고 말았다. 안건으로 올리면 노 대통령 스타일상 참모들에게 의견을 물을 텐데, 우군이 한명도 없었다.

2006년 12월 스웨덴 노벨상 시상식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왼쪽) 교수와 이정우(오른쪽)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필자 제공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듬해 5월 다시 방한해 장하준 교수와 함께 내 사무실을 찾았다. 당시 기업 투자가 너무 저조해 투자증대책을 물어보니 투자세액공제 아이디어를 내놨다. 한국 대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 때문에 투자를 기피하고 거액을 쌓아두고 있다고 이야기하니, 거액 현금 보유는 오히려 적대적 인수합병의 표적이 되는 요인인데 이해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청와대를 나온 뒤 2006년 12월 스웨덴의 노벨상 시상식에 갔을 때 스티글리츠 교수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한국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많은 질문을 했다. 1천명이 참석한 기념 만찬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수상 소감을 말했다(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수상식장에서 바로 수상 소감을 피력하는데, 실제로는 자리를 옮겨 만찬장에서 한다). 가장 감동적인 연설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무크가, 가장 졸렬한 연설은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가 했다. 젊은 시절 돈 버는 걸 공부하고 싶어 경제학을 선택했다는 품위 없는 이야기였다.

정보 비대칭에 따른 시장의 불완전성에 대한 연구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화면)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가 2021년 10월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2021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후위기 시대, 불평등 극복의 경제학’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시카고학파의 시장만능주의 경제학은 현실과 유리돼 있고 역기능이 큰데도 한국에서는 그 영향력이 강하다. 한국 경제학자 중에 수학만 만지작거리는 이가 많은데, 이들이 동류 재생산으로 그 세를 불리고 있다. 그래서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이 가끔 생각난다. <아시아의 드라마>라는 명저를 쓴 뮈르달은 밀턴 프리드먼이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강력히 규탄하는 글을 썼다.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칠레의 악명높은 군부독재정권을 자유시장경제 회복을 이유로 찬양한 이에게 상을 주는 건 노벨상 정신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다. 뮈르달은 이럴 바엔 차라리 노벨경제학상을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경제학계의 전반적 분위기 속에서 스티글리츠는 소중한 자산이다. 스티글리츠가 참여정부의 자문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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