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이 위태롭다
[숨&결]
[숨&결] 이광이 | 잡글 쓰는 작가
밥을 퍼낸 솥바닥처럼 대통령의 지지율이 움푹 꺼져 있다. 대략 2할과 3할을 소폭 등락하는 추세인데 그것은 많이 쳐줘야 셋이다. 이 수치가 그가 시구한 야구의 타율로는 괜찮을지 모르나 지지율로 먹고사는 정치에서는 부끄러운 점수다. 열에 셋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술집에서 잘 나타난다. 대개 서넛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3할은 겨우 한자리 차지할까, 둘이 마시거나 청년들(MZ세대) 자리에는 낄 의자가 없다. 이 정부 출범 초기, ‘취임덕’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기 전에는 잠시나마 4할을 넘길 때도 있었다. 그때는 잘한다, 못한다, 지켜보자는 패들이 갈려 큰 소리가 오가고 술집이 시끌시끌했었다. 불과 얼마 전인데 지금은 다투는 사람이 없다. 지켜보자던 사람은 고개를 흔들고, 잘한다던 사람은 입을 다물어버리니 술집이 조용하다.
다시 보니 ‘윤석열차’가 걸작이다. 대통령 얼굴의 이 열차 조종석에는 김건희 여사가 앉아 있고, 그 뒤로 법복을 입은 검사들이 칼을 들고 줄지어 올라타 세상을 호령하고 있다. 연기를 뿜으며 폭주하는 열차 앞으로 놀란 사람들이 도망치고, 뒤로는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는 풍경. 고교생이 그린 이 카툰에 당시의 풍자를 넘어 내일을 예견하는 통찰까지 담겨 있으니, 과연 금상감이다. 집무실 건진 천공 무속 도이치모터스 날리면 쪽팔려서 언론탄압 도어스테핑 내부총질 이태원 비선의혹 정순신 주69시간 양곡법 문부성장학금 강제동원 굴욕외교 후쿠시마 독도 도청… ‘윤석열차’가 지나온 1년의 길 위에 이런 자갈 같은 말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절반도 못 갔는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무능과 독선과 불통, 그리고 공화정보다는 군주제 스타일이라는 촌평처럼, 말로가 비참한 독재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양태들이 일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핵심은 ‘방향착오’다. 동서남북과 전후좌우는 같은 듯 다르다. 네 방향은 같지만 동서남북이 고정불변인 반면 전후좌우는 어디를 보고 있느냐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예컨대 지도자가 ‘전진하자’고 할 경우 그가 국민과 같은 방향에 서 있으면 가는 길도 같지만 엉뚱한 곳을 쳐다보면서 그러면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북향하는 국민은 북쪽으로 갈 것이고, 동향하는 그는 동쪽으로 가서 서로 갈라서게 되는 것이다. 3·1절 전후 그의 언행을 보면 동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모양이나, 그러려면 가기 전에 국민들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살펴보고 물어보고 의논했어야 했다. 혼자 깜짝쇼 해놓고 바다 건너갔다 와서 돌아보니 뒤따르는 무리가 고작 3할 아닌가.
‘덕은 박한데 지위가 높고, 지혜는 얕은데 꾀하는 일은 크고, 힘은 부족한데 짐이 무거우면 화를 피하기 어렵다. 다리가 부러져 솥이 엎어지면서 끓는 죽을 뒤집어쓴 꼴이니 그 모양이 흉(凶)하다.’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솥 다리는 대개 3개다. 일본도 가고 미국도 가니, 한·미·일이 세 다리 아니냐고 강변할지 모르나 그것은 붓대롱으로 세상을 보는 관견(管見)일 뿐. ‘북에 1원도 못 준다’거나 이란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적’이라면서 상대를 거지 취급하고 멸시하더니, 일본과 미국에는 간도 없고 쓸개도 없이 굽신거리는 꼴이 아닌가. ‘강한 자에게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비정한 ‘삯꾼’을 국제사회가 비웃고 있다’고 한 천주교 사제들의 비판은 너무나 통렬하다. 삯꾼은 사이비와 사기꾼의 중간쯤 되는 말로, ‘가짜 목자’를 뜻한다. 평생 남을 의심하고 조사하는 검사직만 해서 그런지 몰라도, 세상을 선악과 흑백으로 재단하는 분열된 의식 속에 공존의 지혜가 싹틀 여지는 없다. 외교가 그리 쉬운 일이면 누군들 못했을까? 동쪽에만 솥 다리를 두개 세워놓으면 불균형이라, 바람만 불어도 엎어지기 쉽다. 남에 하나, 동에 하나 세웠으면, 나머지 하나는 서북방에도 놓아야 한다.
1년이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자존심 상한 국민 입에서 퇴진과 탄핵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터져 나오는 지금, 솥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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