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 ‘저탄소 축산물 인증제’ 연구용역 4개월…답은 정해져 있다?
[왜냐면] 서성원 | 충남대 동물자원과학부 교수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저탄소 축산물 인증 기준’을 마련했다. 한우 거세우를 키우는 농가가 기존 농림부 인증제 7종 가운데 1개 이상을 취득하고 △탄소 배출량(70점) △저탄소 기술 적용 여부(20점) △기타 항목(10점) 등에서 60점 이상을 획득하면 저탄소 축산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비록 축산업 전체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지만, ‘온실가스 저감’이 시대정신이 된 상황에서 축우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탄소 저감에 노력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좋은 취지의 설익은 정책들이 가져온 혼란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이번 정책 또한 바늘허리에 실 매는 식은 아닌지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발표한 인증 기준이 업계에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첫째, 기존에 도입한 농림부 인증 제도에 참여하라는 것. 둘째, 한우 키우기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농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셋째, 사육 규모를 늘리고, 체계적으로 사료와 분뇨를 관리하고, 한우를 단시간에 크게 키워 생산 효율을 높이라는 것이다.
현 정책의 우선적 문제는 ‘탄소 제로’라는 목표에 적합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평가 요소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탄소배출량 점수는 사육 개월령과 도체중(도축 뒤 고기 무게)에 따른 간접 계산식을 이용해 산출하는데, 어린 나이에 도축할수록, 이때의 체중이 무거울수록 유리하다. 저메탄 사료 급여라는 항목이 있긴 하나 배점이 적고 기준이 모호해 온실가스 배출 자체보다 성장률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1㎏의 한우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단순히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한다고 해서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한우의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사료 작물의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작물 생산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한우 생산의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장 속도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사료 공급, 사육, 분뇨 처리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또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것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쇠고기 생산량은 유지한 채 사육 두수를 줄여야 한다. 따라서 한우 사육 두수와 한우 도체의 수급 조절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한우 사육 두수 증가와 한우 가격 폭락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사육 기간이 길어 정책의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한우 산업에서 이러한 수급 조절은 항상 어려운 숙제다. 생산 효율의 증대는 생산량의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이는 사육 두수와 가격 변화의 진폭을 키워 한우 시장의 불안정성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더욱이 한우 생산의 효율을 높이는 정책은 이른바 ‘공장식 사육’이라 불리는 ‘집중 사양’ 방식을 오히려 유도하게 된다. 사육 두수를 늘려 규모화하고 체계적 사양 관리와 분뇨 관리를 하고 성장 속도를 높이는 것, 이것이 집중 사양 방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는 친환경·동물복지를 지향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현재의 인증 기준은 기본적으로 초지를 활용한 방목·재생농업을 실천하는 농가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양 방식은 초지가 흡수하는 탄소로 인해 탄소의 순 배출량이 적거나 거의 없을 수도 있지만, 동물의 성장률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성장 속도를 높이는 사양 방식은 잘못하면 동물의 건강에 무리를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정책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기존 인증제 참여가 선행 조건이고, 참여 농가는 쉽게 인증받을 수 있다면 새로운 인증제가 왜 필요한 것인가. 저탄소 축산물 인증제 도입을 위한 연구 용역의 연구 기간은 단 4개월이었다. 혹시 답을 정해 놓고 정당화할 구실을 찾기 위한 시간은 아니었는가.
제도 마련과 기준 설정은 한우 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제도가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사양과 육종 기술의 개편이 필수적인데, 한우는 세대 간격과 사육 기간이 길어 기술 변화를 통해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는 데 10년 이상 걸린다. 한 번 낸 물길은 돌리기 어렵다. 물론 시범사업을 통해 타당성을 살피는 단계가 있기는 하지만, 올바른 정책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먼저일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양한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의 논의와 연구를 거친 뒤, 정책이 갖는 철학과 방향을 실현할 최선의 방안을 수립하길 바란다. 사상누각은 무너지게 마련이고, 다치는 건 우리 농민과 일반 소비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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