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3천원, 이론은 설명 못해도 신념은 이뤄내요”
“꽃에서 향기가 나서 나비와 벌이 모이듯이, 3천원의 낮은 가격은 어떤 경영이론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신념을 갖고 몰입하면 이뤄낼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달 10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3, 전북대학교 새 정문 앞에서 3천원짜리 김치찌개를 파는 ‘청년식탁 사잇길’이 문을 열었다. 청년들에게 식사 나눔과 쉼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이곳은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김회인(48) 신부가 대표를 맡고 있다. ‘사잇길’은 사람의 첫 글자 ‘사’, ‘서로를 잇는다’에다 존재를 나타내는 ‘있다’의 소리 나는 대로 표기 및 ‘먹는다’의 영어(eat) 표현 등 중의적 의미의 ‘잇’, ‘여정’을 뜻하는 ‘길’을 조합했다. 문 연 지 1개월이 지난 이곳이 제대로 운영되는지가 궁금해 지난 14일 방문했다.
“식당 수익금을 청년지원사업으로 쓰려고 계획했는데, 첫번째 단위사업으로 식사권(쿠폰)을 1500매를 발행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등을 위해 주변 주민센터와 청소년단체 등 9곳과 진행한 것입니다. 또한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식탁 중심의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도록 아르바이트생 13명을 모집했습니다.”
애초 문을 연 3개월 동안은 80명 안팎으로 손님이 있어야 유지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120~150명가량이 찾는다고 했다. 목표치 1.5~2배에 해당해 일단 성공한 셈이다. 직원 2명과 김 신부가 일하는데 이용객이 늘면서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는 ‘시간당 얼마’라는 단순히 돈을 버는 개념이 아니다. 그는 집단 아르바이트라고 표현했다. 즉 일에다가 봉사라는 의미가 더해진다는 것이다. 고민하는 청년들이 이곳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려는 주체로 나가자는 설명이다. 대상자들이 서로가 골목친구로서 주체적으로 자연스럽게 모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지만 이곳이 돈만 버는 장소가 아니라, 청년의 고민을 서로 나누고 자신의 희망을 키우는 곳으로 발전시키는 놀이터라는 것이다. 목표를 ‘노나 놀자, 나눔으로 놀자!’를 내세우는 이유다.
청년·노숙인 편히 먹도록 가격 책정
저렴한 임대료와 봉사자 덕분에 가능
한달만에 목표 2배 하루 150명 찾아
무료 카페선 동아리 모임·행사 열어
알바생 13명 ‘일+봉사’ 공동체 이뤄
문화·마음의 밥 만드는 플랫폼으로
“팔복동 공단에 2호점 내는게 목표”
이곳이 식당이 아니라 식탁인 것은 먹는 것만을 해결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밥’을 넘어 ‘문화적인 밥’과 ‘마음의 밥’을 만드는 플랫폼 구실을 하겠다는 것이다. 밥 먹는 행위도 놀이이고, 식탁 공동체를 통해 서로 어우러지고 교류하며 소통한다. 청년만의 배타적 공간이 아니라, 노숙인도 청년이랑 함께 할 수 있고,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존엄한 인간으로서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동네 골목이 되기를 그는 희망한다. 이런 뜻을 담아 ‘길에 선 사람’을 시로 직접 썼다. 사람 인(人)자는 ‘서로 엇대어 있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라고 설명했다. “누군가 쓰러질 듯/ 엇대어 기대어선/ 생이 그러하기에// 사랑이라 부르고/ 삶이라 행동하며/ 사람이라 마주하기로// 생명을 나누고 평화를 누리는 길에 선 사람아!”
밥 먹는 공간 옆에는 무료 운영 카페가 있다. 독서 등 청년동아리의 모임과 행사가 가능하다. 여기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최대 50명 정도의 시청이 가능하다. 앞으로 청년들이 주관하는 청년인권영화제도 꿈꾸고 있다.
식사비가 왜 3천원이었을까? 가격을 정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설문을 돌렸다. 400명가량이 답을 줬다. 많은 응답이 4천원, 5천원, 3천원 순이었다. 하지만 3천원으로 가격을 결정한 것은 고립된 청년과 노숙인 등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가격대가 3천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저렴하게 장소를 임대해줘서 가능했다. 식사 시간대는 점심이 오전 11시~오후 2시30분, 저녁이 오후 5시30분~오후 8시다. 일요일에는 쉰다.
전북대 공대 94학번 출신인 그는 2003년 신학교에 입학한 뒤 201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에게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청년이라고 하면 보통 대학생만 생각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일찍 자립을 준비하는 사람도 청년입니다. 여러 이유로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일하는 청년들이 있는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공단 안에 청년식탁 사잇길 2호점을 내고 싶습니다. 거창한 것보다는 기회를 놓친 청년들이 여기에서 희망을 키운 뒤 온전히 자리 잡고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목표입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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