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세습 노사 첫 입건... 尹 “미래세대 기회박탈, 뿌리 뽑아야”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고용 세습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참모들에게 이같이 지시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밝혔다. 일부 기업이 장기 근속한 직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고용 세습’ 조항을 노조와의 단체 협약 등으로 규정하고 채용해온 데 대해 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고용 세습 단체 협약은 채용 비리와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부모 찬스’로부터 소외된 청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현대판 음서제인 고용 세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단체 협약에 고용 세습 조항을 유지하고 있는 노사 관계자들에 대해 처음으로 사법 처리 절차에 착수했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이 기아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금속노조위원장을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기아차 사 측과 금속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사내 비정규직,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노조) 조합원의 직계 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조항이 있다. 고용부가 지난해 이 조항을 없애라는 시정 명령을 내렸으나 따르지 않자 책임을 물은 것이다. 검찰이 기아차와 금속노조 관계자들의 혐의를 인정해 기소하면, 이들은 재판을 통해 각각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고용부는 지난해 100인 이상 사업장 1057곳의 단체협약을 전수 조사해, 63곳이 고용 세습 조항을 두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최소 25곳은 민노총 산하 노조와 사 측이 체결한 것이었다. 기아차를 비롯한 58곳의 단체협약에는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직원의 직계가족이나 피부양자 등을 우선 채용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5곳의 단체협약에는 노조나 직원이 추천한 사람을 우선 채용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고용부는 이런 조항이 모두 구직자나 다른 조합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으로서 고용정책기본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보고, 조항을 없애라고 명령했다. 63곳 중 단체협약의 유효 기간이 만료돼 자연스럽게 사라진 2곳과 폐업 중인 1곳을 제외하고 54곳이 고용부의 시정 명령을 따랐다. 5곳은 아직 시정 명령서를 받지 않았거나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기간 중에 있다. 반면 기아차는 기한이 다 되도록 단체협약을 고치지 않았다.
고용 세습 조항은 공정한 채용 경쟁을 막고 구직자들의 기대를 좌절시키는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이런 조항들은 이미 사문화됐고, 이 조항으로 채용이 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러나 고용 세습 조항으로 우선 채용되는 사람이 있어도 이런 사실이 기업 외부로 공개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조항이 사문화됐다는 주장을 확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문화된 조항이 맞는다면 왜 조항을 없애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노총 금속노조 산하인 기아차 소하지회는 2021년 11월 기아차가 5년 만에 생산직 신규 채용을 검토하자 고용 세습 조항을 근거로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기아차 사 측은 고용부에 ‘2014년 단체교섭 때마다 노조 측에 고용 세습 조항 삭제를 요구했으나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행법상 기아차 노사가 고용부의 시정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형사 처벌의 최고 수위는 벌금 500만원에 그칠 전망이다. 이 때문에 고용 세습 단체 협약이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용부는 올해 국회에 제출할 공정채용법(채용절차법 개정안) 등에 고용 세습을 직접적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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