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리버스 스윕’ 이끈 김종민 감독 “지도자 인생 최고의 승리”
팀 연패에 일부러 승부욕 자극도
2차전 마지막 세트서 힌트 얻어
로테이션·포지션 이동 반격 성공
어느덧 도로공사와 7년째 동행
상처 주고받고 어려움도 많지만
총 우승 2회 성과… 진심 통한 듯
흔히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일 끝난 2022~2023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던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의 격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 예측 불가능성이 최대로 재현된 한 판이었다. 1,2차전을 흥국생명에 내준 도로공사는 3차전부터 반격을 시작해 내리 세 경기를 잡아내며 사상 초유의 ‘리버스 스윕’ 우승을 거머쥐었다.
일주일 동안 각종 행사와 인터뷰로 바쁜 나날을 보낸 김 감독은 여전히 우승의 현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긴 순간엔 막 기쁘긴 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게 뭐지, 우리가 진짜 이긴 건가’ 싶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고 답했다.
도로공사 선수단엔 챔프전을 앞두고 감기 바이러스가 덮쳤다. 그 결과 1,2차전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졌다. 2차전을 0-3으로 완패당한 뒤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감기는 핑계다. 실력에서 흥국생명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김 감독이 우승에 대해 어느 정도 내려놓은 것으로 보였다.
김 감독이 그런 인터뷰를 남긴 속내는 선수단 자극이었다. 그는 “선수들이 기사를 다 챙겨보는 것을 아니까 선수들을 자극하려고 한 말이었다. 감기도 감기지만, 우리 팀의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선수들이 읽고 자극받길 바랐다”고 말했다.
3,4차전을 따내고 맞은 6일 5차전. 역대 V리그에서 1,2차전을 모두 내준 팀이 5차전을 끌고 온 것 자체가 도로공사가 처음이었다. 김 감독은 “내가 평소 세리머니가 그리 큰 편이 아닌데, 그날은 유독 컸다. 그만큼 공 하나 하나에 몰입했다. 정말 두 팀 다 모든 걸 쥐어짜내서 한 경기였다. 내 지도자 인생을 통틀어도 가장 힘들었지만, 최고의 승리였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2022~2023시즌을 앞두고, 누구도 도로공사의 우승을 점치지 않았다. 주전들이 ‘노쇠화’됐다는 게 주 이유. 김 감독은 “전문가들이 5,6위로 점쳤고, 나도 쉽진 않겠다 싶었다. 시즌 들어가서도 상대를 시원하게 이길 때가 거의 없었다. 승리한 경기도 겨우겨우 이긴 게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시즌 4승32패로 최하위를 기록한 페퍼저축은행에게 2승을 헌납한 유일한 팀이 도로공사였다.
정규리그 1위 흥국생명도 꺾을 수 있는 저력이 있지만, 최하위 페퍼저축은행에게도 패할 수 있는 ‘도깨비팀’ 도로공사를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기 위해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기본기과 자기 역할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우리 팀은 욕심을 부리면 망가진다. 자기한테 맡겨진 것만 해라’라고 주문했다. 선수들은 기록이 자기 연봉으로 연결되니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는데, 팀을 위해 헌신하고 승리를 위해 한 발 더 뛰는 배구, 기본기를 바탕으로 어이없는 범실을 하지 않는 배구를 해야만 이길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코치로 재직하던 2012~2013시즌 도중 사임한 신영철 감독 대신 감독 대행을 맡고, 2013~2014시즌부터 대한항공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 김 감독은 2015~2016시즌 도중 프런트와의 불화로 사령탑을 그만뒀다. 대한항공 직원 신분(차장)이었던 김 감독은 이후 김해국제공항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다 2016년 3월 도로공사 감독직을 제의받았고, 가족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수락했다. 이는 곧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두고,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인 프로 감독직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로부터 어느덧 7년이 지났다. 2017~2018시즌엔 도로공사 배구단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고, 이번 챔프전 우승으로 V2까지 일궈냈다. 현재 여자부 감독 중 가장 오랜 기간 사령탑을 수행하고 있는 이가 바로 김 감독이다. 그는 “도로공사를 처음 맡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할 줄은 몰랐다”면서 “길게 하다보니 장점은 쭈욱 같이 해왔던 선수들이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 단점은 선수들도 나를 너무 잘 안다는 것이다”라며 웃었다.
울산 출신인 김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 야구 선수를 했다. 부산에 있는 야구 명문 중학교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받았다고. 김 감독은 “어머니가 뭘 부산까지 가서 야구를 하느냐며 반대를 했다. 당시 다니던 초등학교에 여자배구부가 있었다. 교장 선생님도 배구를 엄청 좋아하셨는데, 운동을 워낙 좋아하지만 야구를 할 수 없게 된 나를 교장 선생님이 키가 크다며 배구를 할 수 있게 추천서를 써주셨다. 덕분에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배구를 하게 됐다. 배구 시작이 늦은 편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진학한 울산 중앙중학교에서 현재 GS칼텍스 사령탑을 맡고 있는 차상현 감독을 만났다. 두 감독은 고등학교도 마산 중앙고로 진학하며, 30년이 넘는 진한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1974년생인 김 감독은 올해로 한국 나이로 쉰이 됐다. 50세의 다른 이름은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 김 감독에게 하늘의 명은 뭘까. 김 감독은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배구고, 중1 때 시작한 이후로 항상 최선을 다 했다. 그 덕분에 현역 시절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지도자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다. 앞으로도 부족하지만, 더 많은 노력을 하려고 한다. 배구를 하는 것, 그것이 하늘이 나에게 내린 명이 아닐까 싶다. 배구는 내 인생 그 자체다”라고 답했다.
성남=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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