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총재 'K점도표'로 투명성 높였지만···정부와 밀착에 한은 독립성 우려도

조지원 기자 2023. 4. 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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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용 한은 총재 취임 1년
IMF서 쌓은 경험·인적 네트워크
레고랜드 등 위기 극복서 빛발해
포워드 가이던스 첫 도입 했지만
전례없는 직설화법에 시장 혼란도
경기 우려속 금리인하 압박 거세
하반기 통화정책 시험대 오를 듯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달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서울경제]

21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이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말할 때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 경력이다. 총재 부임 직전까지 IMF의 아시아태평양국장으로 8년 동안 일했던 이 총재는 한은에서도 IMF에서 쌓은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이 총재가 보인 정책적인 행보도 IMF 경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평가다. 재정·통화정책은 물론이고 경제성장률이나 가계부채 등 국가 경제 전반을 들여다보는 IMF의 특성대로 이 총재의 관심은 기준금리에만 얽매어 있지 않다. 평소 재정·통화정책의 ‘정교한 조합’을 강조하는 것이나 매주 일요일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정례 회동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전통적인 한은 총재 역할에서 확실하게 벗어난 모습이다.

지난해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나 원·달러 환율 급등 사태 등은 이러한 정부와의 정책 공조가 빛을 발한 순간이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 단기자금시장의 불안이 확산하자 한은은 정부와 협의를 통해 적격담보증권을 확대하고 환매조건부증권(RP) 매입에 나서는 등 시장 안정화 대책을 적극적으로 내놓았다. 환율이 달러당 1400원대 중반까지 급등했을 때도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를 체결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했다. 이후 단기자금시장이나 외환시장은 다소 안정을 되찾았다.

과거 절간같이 조용하다는 의미로 불린 한은사(寺)라는 말은 이 총재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지만 독립성을 지켜야 할 중앙은행 총재가 정부와 밀착하는 것을 마뜩잖게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이 총재 취임 1년 만에 기준금리를 1.50%에서 3.50%까지 2%포인트나 올렸음에도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가 안정을 가장 우선한 과거 총재들과 달리 이 총재는 정부가 신경 써야 할 성장률을 함께 고민할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전략적 모호함보다는 선명함을 강조하는 이 총재의 소통 방식도 눈에 띄는 변화다. 이 총재는 지난해 11월 금통위부터 ‘최종금리 3.50% 3명, 3.25% 1명, 3.75% 이상 2명’ 식으로 한국식 점도표를 도입했다. 과거에는 한은 총재가 최종금리에 대한 금통위원들의 개별 견해를 직접 제시하는 일은 생각할 수 없던 일이다.

최근처럼 경제가 불확실한 때는 이러한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적 정책방향 제시)가 위험하다는 견해도 있다. 한은 총재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화법이 전례 없는 일인 만큼 시장 혼란도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경제주체들이 통화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정책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이 총재는 경직적인 한은 문화를 바꾸는 데도 적극적이다.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며 ‘주간 현안포럼’ ‘타운홀미팅’ ‘총재와의 점심·대화’ 등 여러 소통 창구를 신설했다. 국회사무처나 대한상공회의소 등 외부 기관과의 협업도 늘어나는 등 대외 활동도 많아지고 있다.

다만 이 총재가 몰고 온 변화가 임기 이후에도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한은 직원들이 전임 이주열 총재 때부터 강하게 요구해왔던 처우 개선 문제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 총재가 취임사에서 “일에 대한 사명감 못지않게 급여 등에 있어서 만족도도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고 먼저 언급해 기대를 키웠던 만큼 실망도 크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총재의 통화정책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요금 인상 등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한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연내 금리 인하 압박이 점차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외풍으로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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