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사랑과 친절 바이러스
2001년 세계적으로 저명하고 권위 있는 Lancet 학술지에 실린 근사체험 연구에서는, 죽었다가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사람들 중 일부가 겪는 근사체험이 체험자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알기 위해, 경험자 23명과 다시 살아났으나 근사체험은 겪지 않았다고 한 무경험자 15명을 8년에 걸쳐 조사하고 비교하였다.
근사체험 경험자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수준이 높아졌고, 인생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하며, 영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사후 생에 대한 믿음과 일상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크게 증가했다.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고 하루에 한 번 자신의 항문으로 배변할 수 있는 것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지만, 근사체험자들은 이렇게 사소해 보이고 일상적인 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증가하였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순간의 체험이 큰 영향을 미쳐 8년이 지나서까지도 삶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2012년 칠레에서 열린 세계내과학회에 참석했을 때 한국 의사들을 안내했던 현지 가이드는 어릴 때 이민을 온 한국인이었는데, 28세 때 오토바이 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당했을 때 근사체험을 한 후의 극적인 변화를 이렇게 고백했다. "다시 깨어난 이후로 제 인생은 180도 바뀌었고, 햇살, 잔디, 아침 이슬과 같이 전에는 하찮게 여긴 모든 것들이 특별하게만 보입니다. 사람들을 관찰하면 속마음에 감추어진 진실이 보일 때도 있고요. 예민해졌다기보다는 이해하는 마음이 더 넓어졌다고 할까요? 가끔씩은 자연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17년째 죽음학 강의를 하면서 청중들에게 근사체험을 알렸는데, 직접 체험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하는 등 근사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가 청중들에게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어떤 심리학 교수가 말한 대로, 근사체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사랑과 친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과 같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근사체험은 체험자의 뇌가 만들어내는 착각이나 꿈이나 환상이 아니다. 호흡이 멎고 심장 박동이 없고 뇌파가 측정되지 않는 사망 상태에서 일어난다. 하버드 의대 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 박사는 근사체험을 겪은 후 '뇌가 의식을 만든다'는 기존의 생각에서 '의식은 뇌와 무관하다'는 생각으로 전환하게 된 과정을 기록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말기 암 환자를 비롯해 임종이 임박한 사람이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이 소멸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게 근사체험 현상이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도록 돕게 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정현채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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