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일대일로' 돈 쏟아붓더니 … 부실채권 급증에 골머리
경제난 겪는 스리랑카 등에
무분별한 차관 제공이 화근
커지는 국가 디폴트 리스크
2020년 이후 참여국서 9건
中, 부랴부랴 구제금융 확대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사회기반시설을 짓거나 자본을 투자해 경제·외교 관계를 강화해온 중국의 국가 정책 '일대일로'가 부실 채권 급증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 공동체를 구축하고 에너지 교역망을 확보한다는 구상과 달리 참여 국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가 잇달아 불거지면서 채권국 중국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조사기관 로듐그룹이 집계한 수치를 인용해 2020년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전 세계 도로와 철도, 항구, 공항, 기타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중국 국가기관의 대출 금액 중 약 785억달러가 재협상되거나 탕감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2017년부터 2019년 말까지 3년간 기록한 재협상 및 탕감액인 170억달러에 비해 4배를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몇 년 새 부실 채권이 급증함에 따라 일대일로 참여 국가에 제공한 중국의 차관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일대일로는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 지시로 시작된 중국의 최대 국가 사업으로, 올해가 시행 10주년이 되는 해다. 차관의 90% 이상을 위안화로 빌려줘 위안화의 글로벌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푸단대 녹색금융개발센터에 따르면 현재까지 총 149개국이 이 프로젝트에 발을 걸쳤다. 지난 10년간 총대출액은 1조달러로 추산된다.
이 같은 구상과 달리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예상외의 난관에 봉착했다. 참여국의 잇단 국가 디폴트 리스크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성장 둔화,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 높은 국가 부채로 수많은 일대일로 참여국의 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국가 디폴트 건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이후엔 국가 디폴트가 총 14건 발생했으며 이 중 9건이 일대일로 참여국에서 나왔다.
재정난을 겪는 국가에 차관을 무분별하게 제공한 것이 화근이 됐다. 미국 윌리엄&메리칼리지 원조데이터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중국이 공여한 해외 차관 중 60%가 현재 재정난을 겪는 국가에 투입됐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빌미로 저개발 국가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를 제공한 뒤 이들을 '부채의 함정(debt trap)'에 빠뜨려 경제적 속국으로 만든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실제로 스리랑카는 2010년 중국에서 대규모 차관을 들여와 '함반토타항'을 건설했으나, 지속된 경제난으로 결국 2017년 항구 지분 일부와 항만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줘야 했다. 또 중국은 파키스탄에 도로, 철도, 송유관 등을 대규모로 지어주고 '과다르항' 이용권을 취득했다. 과다르 주민은 항구를 운영하는 중국 회사가 현지 자원을 독차지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초 중국은 참여국들의 부채 탕감 논의에 소극적으로 일관해왔다. 특정 국가에 부채를 탕감해주면 동일한 요구가 빗발칠 것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참여국의 디폴트 우려가 가중된 상황에서 중국도 마냥 손 놓고 볼 수 없게 됐다. FT는 "일대일로는 중국을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만들었다"면서도 "최근 통계 자료를 보면 일대일로가 역설적으로 중국과 중국 대형 은행의 재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당국도 향후 채무국에 대한 채무 조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7일 경제 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이강 인민은행장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춘계회의에서 개도국 채무 조정에 관한 공동 프레임워크를 이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공동 프레임워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이 2020년 개도국과 최빈국 채무를 재조정해주기 위한 합의다. 공동 프레임워크 합의에도 중국은 채무 부담 경감 조치를 도입한 22개국 채권국의 모임인 '파리클럽'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채무 협상이 진전되지 않았다.
중국은 일대일로에 참여한 149여 개국 중 대규모 대출자들의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구제금융도 확대하는 추세다. 세계은행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킬세계경제연구소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구제금융 규모는 2019년부터 2021년 말까지 약 104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년간 이뤄진 구제금융 총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부실 채권이 눈덩이처럼 늘고 있지만 현재로선 중국이 일대일로 기조를 수정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최고 권력자인 시 주석이 일대일로를 직접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장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박사후과정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를 '세기의 사업'이라고 명명한 상태"라며 "일대일로 실행 방식에 오류가 있었다는 말조차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올해 말 개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대일로 국제협력포럼에서 일대일로 10주년의 성과를 축하하고 향후 협력 계획을 구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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