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년만 3명째···전세사기는 ‘전세살인’이다

전지현·박준철 기자 2023. 4. 1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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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아파트 60여 가구
전세 사기 당해 보증금 떼일 처지
경매 낙찰 땐 집 비워주고 나가야
“그간 모은 돈 다 날릴 위기인데
정부 대책 명확치않아 불안 가중”
인천 전세사기로 피해자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17일 인천 미추홀구의 해당 세대 앞에 전세사기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사흘 만에 또 다른 피해자가 17일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들어 세 명째다.

이날 전세사기 피해자 A씨(31)가 살던 인천 미추홀구 주상복합아파트 로비에는 “ㅇㅇ아파트는 현재 임대인의 의도적인 채무 불이행과 조직적인 전세사기로 수사중” “집을 보러 오신 분께서도 또다른 피해자나 공모자가 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 아파트에 입주한 60여 가구는 ‘인천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로부터 전세 사기를 당해 보증금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

전세사기 대응을 위해 오픈카톡방 등에서 교류하고 함께 활동했던 주민들은 A씨의 극단적 선택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인천 전세사기로 피해자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17일 인천 미추홀구의 해당 세대 앞에서 같은 아파트 입주민 한상용((53)씨가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A씨의 집 앞에 조화를 헌화하러 온 한상용씨(53)는 “최근에도 소통을 하셨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7일 집이 낙찰된 가구가 공동현관에 붙은 현수막을 떼자 A씨가 “저도 일정 마치고 복귀해서 다시 붙여 놓겠다”고 한 문자를 보여주었다. 이날 A씨의 자택 현관에는 “당신들은 기회겠지만 우리들은 삶의 꿈!” “한다리 건너면 당신의 지인집”이라고 전세 사기를 꼬집는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A씨는 전세사기로 90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2019년 9월 전세보증금 7200만원에 전세 계약을 한 그는 2021년 9월 임대인 요구로 1800만원 올린 9000만원에 재계약했다. 2017년 준공돼 전세보증금이 8000만원 이하여야 최우선변제금 27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전세보증금이 올라간 탓에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A씨는 전날까지도 출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집 앞에는 수도요금 체납증이 붙어있었다. 전세 대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병렬 미추홀구 전세사기대책위 부위원장은 “활동할 때 금전적으로 힘들다는 내색이 전혀 없던 분”이라며 “무엇이든 흔쾌히 앞장서서 도와주셨다”고 회고했다.

지난 14일에도 인근 아파트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B씨(26)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로부터 불과 사흘 만에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 부위원장은 “B씨의 발인이 어제였다”며 “혹시 나쁜 마음을 먹을까봐 주민들에게 힘들면 꼭 연락을 주시라,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단도리를 했는데 이런 일이 또 발생했다”며 눈물지었다.

A씨와 B씨의 집은 임의 경매에 넘어갔고, 아직 낙찰자가 나오지 않았다. B씨는 2019년 입주할 때 전세금 6800만원에 계약했으나 2021년 재계약 때는 9000만원으로 2200만원 올려줬다. 2019년 당시 1억8000만원 근저당이 설정된 B씨 집은 지난해 경매에 넘어갔다. 낙찰 시 B씨가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금은 3400만원에 불과했다. B씨 역시 수도요금도 못 내는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아무리 경매 절차를 중지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해도 경매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직접 주택을 낙찰받지 못하면 피해자들은 경매 후 집을 당장 비워줘야 한다. 이날 만난 한 전세 사기 피해 주민은 “저는 3일 후면 집을 비워줘야 한다”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전세금을 상환해야 하고 그동안 모은 돈을 다 날린 상황에서 정부의 대책이 명확하지 않아 피해자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것이 문제”라며 “피해자들이 시간을 벌 수 있도록 경매를 중단하는 게 시급하다”고 했다. 김 부위원장은 “최소한 낙찰우선권이 피해자들에게 부여돼야 한다”며 “벌써 세 명째, 그것도 젊은 청년들이 목숨을 버리고 있는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고 반문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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