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부터 소주까지 ‘제로에 감춰진 진실’···먹어야 돼, 말아야 돼

노도현 기자 2023. 4. 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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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마트 음료코너에 ‘제로’ 음료들 비롯한 음료들이 진열돼 있다. 노도현 기자

회사원 A씨(39)의 냉장고에는 각종 ‘제로’ 음료들이 많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당뇨 고위험군이라는 경고를 받은 뒤부턴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를 찾기 시작했다. 제로콜라는 맛이 없다며 오리지널만 고집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제품 영양정보부터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A씨는 “음료를 아예 끊기는 힘들어서 제로음료를 마신다”며 “예전보다 맛도 좋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져서 좋다”고 말했다.

최근 잇따르는 ‘제로 소주’ 출시도 A씨에겐 반갑다. 술자리에서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문이 들긴 한다. A씨는 “설탕이 들어간 것보다 낫겠지 싶긴 한데, 어느 정도까지 괜찮은 걸까 궁금하다”고 말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꼽히는 설탕 대신 대체감미료로 단맛을 내는 ‘제로 슈거(무설탕)’ 전성시대다. 건강과 즐거움을 동시에 챙기는 ‘헬시플레저’ 바람을 타고 무설탕을 내세운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탄산음료는 물론 커피·차, 스포츠음료, 주류, 과자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든 무설탕 제품들,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걸까.

모든 건 ‘과유불급’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승인한 감미료는 22종에 달한다. ‘코카콜라 제로’ ‘칠성사이다 제로’를 비롯한 다수의 무설탕 탄산음료는 설탕보다 무려 600배 높은 단맛을 내는 수크랄로스와 200배 단 아세설팜칼륨을 사용한다. 두 감미료는g당 4㎉인 설탕과 달리 열량도 없다시피해 다이어트를 중시하는 소비자를 유혹한다.

‘펩시 제로 슈거’는 수크랄로스, 아세설팜칼륨에 아스파탐을 함께 넣는다. 아스파탐은 설탕과 열량이 같지만 당도가 200배 높아 소량으로도 단맛을 낼 수 있다. ‘0칼로리’가 될 수 있는 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열량이 100㎖당 4㎉ 미만일 때 무열량으로 표시하는 것을 허용해서다. 당류가 100㎖ 혹은 100g당 0.5g 미만이면 ‘무당(無糖)’으로 표시할 수 있다. ‘제로’를 내세운 모든 음료에 칼로리와 당이 아예 없는 건 아니란 뜻이다.

전문가들은 “적당히 먹는 것은 괜찮다”고 말한다. 대체감미료가 장기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만큼 과도한 섭취는 경계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인공감미료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논란도 많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으로 즐기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단맛이라는 게 굉장히 중독성이 높다. 당뇨 환자들에게 정 탄산음료를 먹고 싶다면 제로콜라를 먹을 수 있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마음껏 먹으라고 하진 않는다”며 “일반적인 경우도 무턱대고 먹지 말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한비만학회장을 지낸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체중 조절이 필요하거나 당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분이 단 음료를 마시고 싶을 땐 일반 음료보단 ‘제로’ 음료를 먹는 게 낫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확정적이진 않지만 최근 제로 음료를 마셨을 때 오히려 비만이나 심혈관 질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제로라고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많이 먹을 경우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 수 있다”고 짚었다.

식약처가 승인한 감미료 22종. 식약처 제공

인공감미료를 둘러싼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월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연구팀은 인공감미료 에리스리톨이 혈전 위험을 높여 심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수크랄로스와 사카린이 혈당 자체를 높이진 않지만,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끼쳐 혈당 상승을 불러온다는 이스라엘 연구도 있다. 특히 인공감미료가 단맛에 대한 욕구를 자극해 단 음식을 더 찾게 만든다는 분석도 나왔다.

반면 비판적 연구 결과에 의문을 품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에리스리톨 연구의 경우 이미 심혈관질환 위험 요소를 가진 이들이 연구 대상이었고, 실험에서 사용한 에리스리톨 섭취량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반론이 나왔다. 인공감미료 업계는 안정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식품안전청 등의 승인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식약처, FDA 등 식품당국은 승인된 감미료를 1일 섭취허용량 이내에서 섭취한다면 안전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인공감미료의 1일 섭취허용량은 캔음료를 수십개 먹어야 채울 수 있는 수준이다. 식약처의 ‘2019년 식품첨가물 기준 및 규격 재평가’를 보면 1일 섭취허용량 대비 국민 평균 섭취량은 수크랄로스 0.19%, 아스파탐 0.12%, 아세설팜칼륨 0.30%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제로소주는 살 안찐다? 아니 똑같다
마트 주류코너에 붙어 있는 제로 슈거 소주 광고. 노도현 기자

다만, 제로 딱지가 붙은 주류는 일반 음료와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 알코올이 들어가는 한 ‘0칼로리’는 나올 수 없다.

일반 소주와 제로 소주의 열량 차이는 크지 않다. 16년간 소주 판매량 1위를 기록한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후레쉬’ 360㎖에 표시된 열량은 100㎖ 당 92㎉로 한 병 기준 331.2㎉다. 같은 업체가 만든 ‘진로 제로 슈거’와 롯데칠성음료가 내놓은 무설탕 소주 ‘처음처럼 새로’는 320.4㎉(100㎖ 당 89㎉)다. 설탕을 뺐는데도 열량 차이가 크지 않은 이유는 알코올 자체가 1g당 7㎉로 고열량이기 때문이다.

애초 소주에는 당 함량이 높지 않은 영향도 있다. 참이슬 후레쉬는 과당과 인공감미료인 효소처리스테비아, 에리스리톨, 토마틴으로 단맛을 낸다. 표기된 당류는 0g로 당이 들어갔더라도 매우 작은 양이다. 일반 소주 대신 무설탕 소주를 먹어 얻을 수 있는 건강상 이득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주류업체들은 그간 꾸준히 소주에 들어가는 과당의 양을 줄여 왔다. 제로 소주는 제로라는 이미지를 활용한 마케팅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무설탕 소주를 찾을 게 아니라 음주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강 교수는 “당을 줄이는 게 아주 미미할 정도로 알코올 자체 칼로리가 매우 높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식사를 하면서 마시거나 많은 양의 고열량 안주와 함께 먹는 한국인들의 음주 패턴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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