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혼선·의견 수렴 부족·노정 경색···미로 갇힌 근로시간제 개편안
이정식 "실근로시간 감축이 목표
국민의견 수렴 더 할것" 밝혔지만
노동계 없는 전문가 기구, 권고안 한계
‘주 69근로’ 지적에 개편안 취지 묻혀
당정대, 메시지 혼선도 여론 악화 자초
노동계, 비판 수위↑···본회의 통과 쉽잖을듯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이 불안해 하거나 우려하고, 원하지 않으면 (추진) 할 수 없습니다.”
현 정부가 추진한 노동개혁 과제 중 입법 추진 속도가 가장 빨랐던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제동이 걸렸다. 고용노동부는 기존 개편안 폐기 없이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보완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편안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메시지 혼선과 의견 수렴 부족, 노정 경색 국면으로 개편안 정책화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계와 야당이 개편안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9월 정기국회에서 시작될 논의도 가시밭길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17일 정부세종청사 내 고용부에서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다음 달부터 두 달간 집중적으로 (개편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며 “정기국회에서 (개편안이) 논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개편안 자체 폐기는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고용부는 개편안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일반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준비 중이다. 7월까지 설문조사를 마친 뒤 보완안이 담긴 개편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6일 발표된 개편안은 발표 전부터 현장의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문가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가 대부분 반영됐는데 이 연구회에는 노동계가 참여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개편안이 발표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노동계의 반발 수위가 더 컸다.
특히 개편안은 주 69시간 근로처럼 특정주 최대 근로시간 계산 지적에 맞닥뜨리면서 당초 취지를 알리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장관도 이날 “개편안에 대한 오해가 크다”며 논란을 불식시키는 데 간담회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이 장관은 “이번 개편안의 목표는 실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라며 “근로자가 직접 선출한 근로자 대표 합의, 근로자 직접 동의, 1.5배 연장근로 가산금제, 정부의 근로시간 감독·규제 등을 보면 주 69시간 근로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국정지지도 여론조사들에서 지지율이 하락한 배경으로 개편안 추진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우리나라는 장시간 근로 국가인데다 장시간 근로는 근로자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개편안을 두고 벌인 메시지 혼선도 그동안 개편안 논의 과정에서 암초였다. 개편안 발표 이후 청년을 중심으로 한 반대 여론이 크자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개편안 재검토와 보완을 지시했다. 이후 윤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는 첫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대통령실은 ‘주 60시간 이상도 가능하다’는 반대해석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이 재차 ‘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고 밝히면서 개편안 논의가 어렵게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이르면 7월 마무리될 개편안 설문조사 결과는 개편안의 보완 방향을 결정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장관은 이날 개편안 보완 방향에 대해 “다양한 옵션(안)을 검토한다”면서도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개편안 보완 내용이)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에서 개편안을 찬성하는 여론이 높게 나오더라도 이르면 9월 국회에 제출된 개편안의 본회의 통과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소야대 국면인 상황에서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동계처럼 개편안의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 대책을 지우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정부 정책과 각을 세우고 있다. 노동계가 근로시간·임금 등 노동 개혁안 전체를 반대하는 점도 앞으로 개편안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노동계를 이끄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5월부터 정부 규탄 성격의 대규모 집회를 줄줄이 예고했다. 당장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이 1만 2000원까지 올라야 한다며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벼르고 있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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