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친시장인가, 친기업인가
친기업적이지만 반시장적
독점기업 이익만 지키는일
경쟁환경 조성해야 친시장
몇 해 전 저는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글을 어느 잡지에 연재 기고했습니다. 예수의 '포도원 주인' 비유에 관해 쓴 글이 일부 독자에게 불쾌감을 주었습니다. 이들은 사회주의 관점으로 성서를 해석한다고 항의하였고, 출판부는 독자 항의를 받아들여 연재를 중단했습니다.
포도원 주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주인은 아침 일찍부터 오전 9시, 낮 12시, 3시, 5시에도 계속 일꾼을 고용했습니다. 주인은 일한 시간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같은 임금을 지급했습니다. 흔히 이야기 속 주인은 하나님으로 이해되지만, 상당수 성서학자는 당시 사회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로 봅니다. 저는 주인과 일꾼 사이의 갑을 관계에 주목했습니다. 협상력 차이와 불공정한 임금 결정 과정에 대해 질문해 보았습니다. 근본주의 입장의 신학자들은 저의 질문을 좌파적이거나 마르크시즘이라 평가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에피소드는 대중이 어떻게 시장경제를 오해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독점력을 가진 고용주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임금을 결정하고 차별도 할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임금 결정 방식은 경쟁이 작동하는 시장경제에서는 벌어질 수 없습니다. 시장경제는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입니다. 기업은 상품시장에서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을 더 낮은 가격에 팔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노동시장에서는 더 좋은 노동 환경과 더 높은 임금을 주기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사실 저의 성서 해석을 두고 왜 자본주의 관점을 적용하느냐고 지적했어야 합니다.
기업이 경쟁해야 하는 시스템이 시장경제이지만, 저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른 이들은 기업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장경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오해는 뿌리 깊고 광범위합니다. 짝퉁 시장주의자들은 친시장과 친기업을 동의어처럼 사용합니다. 둘은 반대말로 사용돼야 할 때도 많습니다. 친기업은 이미 지배적 위치에 있는 기업의 이익을 지켜주는 것이고, 친시장은 지배적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경쟁 상황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도 친시장과 친기업을 혼동하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친시장 노동개혁 정책을 내세우며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을 제시했습니다. 친시장 정책인지 친기업 정책인지 구분하려면 이렇게 질문해 보면 됩니다. "수요 독점력이 있는 기업이 주 최대 69시간 근로 조건을 요구할까, 아니면 고용 경쟁에 놓인 기업이 그런 조건을 요구할까?"
시장과 기업을 동일시하는 실수는 상품시장보다 노동시장 이슈에서 두드러집니다. 노동시장에 대한 경쟁 정책의 무관심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미국 반독점법 정책이 견지하는 소비자후생 기준은 노동시장의 시장집중 문제를 등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 합병 심사는 노동자 임금과 노동환경 변화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습니다.
최근 많은 연구가 노동시장 수요 독점이 노동소득 비중 감소를 낳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 경쟁 당국은 '경업 금지 계약(non-compete agreements)' 폐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 노동자 5명 중 1명은 현재 경쟁업체 취업 금지 계약에 서명해야 합니다. 서명 대상자는 기업 경영진과 테크 산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심지어 패스트푸드점 직원과 청소원까지 포함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유시장 체제에서 고용주가 돈을 더 주는 대가로 계약 조건을 정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라고 질문합니다.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인 리나 칸은 이렇게 답합니다. "경업 금지 조항은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있습니다." 경업 금지는 친기업적이지만 반시장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재수 美인디애나-퍼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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