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할 이유 없다? 김건희 여사 ‘광폭 행보’는 계속된다
與 “김 여사가 원해…보폭 더 넓어질 듯” 野 “누가 대통령인가”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조용한 내조'를 선언했던 김건희 여사가 최근 '적극적인 내조'를 넘어 윤석열 대통령에 버금가는 강행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김 여사는 4월 들어 연일 단독 공개 일정을 가지며 직접 정치적 메시지도 제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국정 파트너' 행보를 본격화했다는 시각이 나오는 가운데, 이제라도 '민간인' 김 여사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또 다시 나오고 있다.
최근 보름 동안 김 여사는 총 11개의 공개 일정을 가졌다. 이 중 단독 일정만 9개에 해당한다. 비공개 오찬 등 비공식적인 일정까지 더하면 하루에 2개가량 일정을 꾸준히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한주만 봤을 때 김 여사의 외부일정 횟수는 윤 대통령보다 3배 많았다.
김 여사가 찾는 현장도 부쩍 다양해졌다. 전문 분야인 문화예술 행보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챙기는가 하면 보훈 관련한 일정까지, 역대 영부인 행보로선 전례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아래 표 참고).
그 과정에서 김 여사가 권한을 넘어서는 메시지를 던져 논란을 낳기도 했다. 12일 김 여사는 청와대 상춘재에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과 비공개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개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 그것이 저의 본분"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야권에선 "대통령이 직접 약속해야 할 일"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며 '민간인' 신분의 김 여사가 언급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같은 날 김 여사가 납북자·억류자 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이런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에 강하게 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 13일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한반도 외교 안보 문제에 대해서 민감한 얘기인데 대통령 부인이 이런 말을 하는 주체로서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간 김 여사의 행보는 주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회복세를 나타낼 때 도드라졌다. 하지만 최근 윤 대통령이 심각한 지지율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 여사의 보폭을 날로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봄철이라 (김 여사에 대한) 행사 참가 요청이 늘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국정을 살피며 각종 행사에 참가하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 주최자들이 '대통령께서 못 오시면 영부인이라도 와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해 자연히 김 여사의 일정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김 여사에게 자신의 '국정 파트너'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역시 방미 준비 등 국정으로 인해 자신이 챙기지 못하는 일정을 김 여사가 대신 챙겨주길 요청했다는 게 대통령실 관계자의 전언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실 내에선 이처럼 현장과 밀착한 김 여사의 행보가 지지층 결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윤 대통령이 향하지 못하는 그늘진 곳으로 직접 찾아가는 모습이 다소 권위적인 윤 대통령의 이미지에 보완재 역할을 해줄 것이란 기대다.
올해 초부터 김 여사가 연루돼 있던 각종 의혹들이 검찰에 의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점도 김 여사의 대외 행보를 늘리는 데 크게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로선 김 여사의 약점이었던 '사법 리스크'를 어느 정도 털어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이 같은 광폭 행보를 김 여사 본인이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실 상황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김 여사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정"이라며 "예전부터 김 여사가 다양한 공개 활동들을 소화하길 바라온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김 여사의 보폭은 앞으로 더 넓고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尹 지지율 낮은데 金 광폭 행보? 서로 더욱 끌어내려"
이 같은 기대와 달리 김 여사의 모습이 자주 노출될수록 부정적인 여론이 커질 거란 관측이 적지 않다. 대선 당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던 데 대한 '배신'으로 보는 시각이 높다는 것이다. 2021년 12월 김 여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여권의 시각과 달리 대중은 김 여사의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데도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넥스트리서치가 S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2월6~7일 실시한 조사에서 야당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에 대해 찬성 의견이 66.4%로 압도적이었다. '정치적 공세'라며 반대한 여론은 24.9%에 그쳤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약점을 채워 시너지를 일으키는 '보완재'가 아닌 서로 '연동된 존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호감도와 비호감도는 서로 연동돼 있어 함께 오르내린다"며 "지금처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저조할 경우, 김 여사의 광폭 행보는 오히려 서로를 더욱 끌어내리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야권에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김 여사의 적극적인 행보가 또 다른 '리스크'가 되고 있다며 이제라도 공적인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이어져 온 '제2부속실 설치' 목소리가 다시금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제1부속실이 윤 대통령과 김 여사 일정과 의전을 공동으로 챙기는 모습이 기형적이며 월권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김 여사의 대학원 동기인 김승희 선임행정관의 의전비서관 승진이 김 여사의 잇단 광폭 일정과 맞물리면서 김 여사 통제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김 여사가 입가경의 '요란한 내조'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며 "대체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누구인가"라고 꼬집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제발 만들라는 제2부속실은 안 만들고 의전비서관실을 제2부속실화 한 것이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여전히 제2부속실 설치에 대해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을 깨면서까지 부속실을 다시 만들기로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김 여사의 연이은 일정과 관련해서도 대통령실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근래 순방 준비에 몰두하고 있어 최근 외부 공식 일정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통령으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챙겨야 할 업무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이 소화하는 일정과 김 여사가 소화하는 일정은 그 규모와 무게가 아주 다르다"며 "단순히 공식 일정 횟수로 나란히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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