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돈봉투 의혹 닮은꼴 ‘2008년 한나라당 돈봉투’ 판결 살펴보니
당협 위원장 등 교통비·식비 ‘관행’이라도
법원 “공정 선거 원칙 위반, 민주주의 훼손”
검찰이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수사를 본격화하자 2008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두 사건이 여러모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우선 두 사건은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혐의도 정당법 제50조 ‘당 대표 경선 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로 동일하다.
혐의를 받는 후보 측이 전당대회 당시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당 대표 후보였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여론조사에서 경쟁자에 큰 폭으로 뒤지고 있었다. 전당대회 당일 대의원들로부터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었다. 민주당 전당대회 때는 1위인 송영길 후보와 2위인 홍영표 후보의 득표율 차가 0.59%포인트에 그칠 정도로 치열했다.
두 사건은 차이도 있다. 민주당의 경우 전당대회 2년 후에 수사가 시작됐다. 한나라당의 경우 전당대회 4년 후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한나라당 돈봉투 수사는 고승덕 당시 의원의 폭로로 시작됐다. 검찰은 100만원씩 담긴 봉투 3개를 고 전 의원에게 준 혐의로 박 전 의장을 기소했다. 고 전 의원 진술과 전당대회 직전 박 전 의장의 은행 계좌에서 돈이 인출된 점 등이 근거였다. 반면 민주당 돈봉투 의혹 사건의 경우 다른 건으로 구속된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 음성파일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은 민주당 돈봉투 의혹 사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 전 의장은 재판에서 당원협의회 위원장 등에게 교통비, 식비 등 실비를 제공하는 건 ‘관행’이었고, 대의원들 의사에 영향을 미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당내 경선은 대선·총선 등 공직선거법이 적용되는 전국 선거보다 중요도가 적기 때문에 설혹 법을 어겼더라도 가벌성이 적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아예 당내 경선 경비 지원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1심인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2012년 박 의장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선고하면서 ‘관행’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내 경선과 같은 당의 내부행사라고 하더라도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통해 선출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정당법 규정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정당법은 특별히 정당의 대표자 선출과 관련한 부정행위 근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회 및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권여당의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대의원 선거결과가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상황이었다”며 “(돈봉투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어 위법성과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민주당도 문제가 된 전당대회 당시 집권여당이었다. 다만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한나라당은 여당이었고, 민주당은 야당이다.
2심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2심인 서울고법 재판부는 “당 대표는 당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현대의 정당국가적 민주주의하에서는 정당의 구성원인 의원들을 통해 국회의 의사결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며 “국정 전반에 걸쳐 유·무형의 권한이 부여돼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보다 엄정하고 공정한 선거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검찰은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 때 고 전 의원 외에 다른 의원 수십명에게도 돈 봉투가 전달된 의혹은 규명하지 못했다. 민주당 돈봉투 의혹 사건에서 검찰은 현직 의원 10~20명이 돈 봉투를 받았고 지역본부장 등까지 포함해 수십 명에게 총 9400만원이 뿌려졌다고 본다. 그러나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받은 윤관석 의원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현금은 계좌이체 기록같은 물적 증거가 없어 추적이 쉽지 않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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