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은둔 청년, 이제는 맛집요리사’…방에서 나와 자립한 사람들[중년 은둔형 외톨이]
괴롭힘·질환·대입 실패 등 사연 다양
같은 처지인 사람 만나 새로운 일 도전
“한국 외톨이들도 위안될 만한 일 찾길”
[헤럴드경제(요코하마)=김빛나 기자] 오코노미야키(일본 전통 철판 부침요리)음식점 요리사인 니시무타 도모히로(36·사진) 씨는 한때 일본식 붙박이장에서 살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였다.
1평도 안 될 만큼 비좁고, 조명도 없어 어두운 곳이었지만 그는 붙박이장에 들어가 있어야만 마음이 놓였다. 고등학교도 다니지 않고 종일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봤다. 2년 넘게 은둔생활을 하면서 체중은 점점 불어 100㎏을 넘었다. 가족들은 그런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니시무타 씨는 “그냥 밖에 나가기 어려웠다”며 “삼남매라 혼자 지낼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벽장 속에 살았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사고가 났다. 니시무타 씨의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벽장 바닥이 아예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반강제로 벽장 밖으로 나오게 된 그에게 친형이 자립 프로그램을 추천했고, 그도 승낙했다.
2년 넘게 은둔해온 그에게 처음 해보는 공동생활은 쉽지 않았다. 니시무타 씨는 “공동생활주택이 집에서 가까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며 “하지만 나도 은둔생활을 정리하고 싶었고, 형이 추천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자립을 위해 음식점에서 일하는 은둔형 외톨이 수련생을 돕는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 이소고구에는 니시무타 씨가 일하는 식당처럼 은둔형 외톨이가 일하는 식당, 농장 등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식당과 농장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을 모아 시장도 열린다. ‘포뇨’라고 불리는 보육시설에서도 은둔형 외톨이들이 방과 후 하교한 초등학생들을 돌본다. 지역주민과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소고구 내에 있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가 지자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이유다.
지원단체가 운용하는 프로그램은 크게 5가지다. 먼저 은둔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상담을 진행한다. 한 달에 한 번씩 프로그램 상담회를 열어 잠재적인 참여자를 모은다. 일본 후생노동성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는 ‘쇼난·요코하마 청년서포트스테이션’에서도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 다음 과정은 공동생활 참여다. 자립 프로그램의 대표적 활동으로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 출근하며 공동생활을 할 수도 있다. 은둔형 외톨이들은 같은 아픔을 지닌 외톨이들과 거주하면서 미래를 고민한다. 아예 지원단체 직원 가족이 은둔형 외톨이와 함께 사는 경우도 있다.
단체에서는 음식점, 보육시설, 그리고 해외 취업 기회 등 3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자립 프로그램 운용단체 K2인터내셔날 소속 야마모토 마사토(49) 씨는 “음식점이나 보육시설은 상대적으로 경력이 없어도 일을 구하기 쉽다”며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 다코야키음식점에 취업해 아예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설명했다.
자기 발로 단체를 찾아온 사례도 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심한 집단따돌림을 당해 1년간 은둔한 경험이 있는 이와세 다카유키(21) 씨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은둔생활에서 벗어났으나 ‘언제든 다시 은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단체를 찾았다. 그는 “같은 반 친구들한테 언어폭행을 당했고, 교과서가 사라지기도 했다. 담임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했으나 제대로 안 들어줬다”며 “은둔 후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에 가고 전문대를 가긴 했지만 어느 순간 학교를 또 안 가더라. 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와세 씨는 자립 과정에서 적성도 찾았다. ‘젊은 농부’가 그의 꿈이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접하게 된 농사가 적성에 맞았다.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흙 만지는 일이 더 좋았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오후 4시까지 농사를 짓는 일과를 6개월 정도 반복했다”며 “유채꽃, 토마토, 브로콜리 등 다양한 작물을 지었고, 시골에서 방치된 농장들이 많은데 내가 가서 일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이 변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시모리 고로(36) 씨는 대학 입시 실패 후 2년간 은둔하다 사회에 나왔고, 이후 또다시 6년 동안 세상과 단절했다. 삶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이시모리 씨는 “재은둔 당시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도망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며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진 기분이 들었고, 이런 내가 살아봤자 뭐하나 하는 극단적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도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자 변화가 생겼다. 처음은 보드게임을 시작으로 몸을 움직였고, 취업 프로그램을 참여하다 자신과 같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를 상담하는 일이 적성에 맞아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이시모리 씨는 “은둔생활을 정리하려면 가족 외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는 아예 다른 일을 해야 한다”며 “한국에도 은둔하는 사람이 많은 거로 알고 있는데 일본처럼 대입이나 취업이 원인일 것 같다. 그분들도 위안이 될 만한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미래를 꿈꾸는 경우도 있다. 3년째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다케다 요시토(28) 씨는 조만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계획이다. 다케다 씨는 “피해망상이 심해 대학을 못 다닐 수준이었다. 부모님이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내 험담을 하는 것 같았다”며 “내가 싫어 벽에 머리를 박았던 적도 있었는데 공동생활을 하면서 괜찮아졌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이런저런 일을 했고, 해외에 나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호주로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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