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여성 현관문에 '수도체납 안내문'…멈춘 전기계량기
인천 '건축왕' 피해 사망자 집에 가보니
(인천=뉴스1) 정진욱 기자 = 인천에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중 2번째 사망자가 발생한지 사흘만에 30대 여성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17일 오전 2시 12분쯤 전세사기 피해자 A씨가 숨진채 발견된 인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
이 아파트의 공동 현관 앞에는 '전세사기 피해아파트 입니다'라는 현수막이 붙여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취재진은 A씨의 문앞에 붙여진 문구를 보고 그가 얼마나 괴롭고 억울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A씨는 자신의 문 앞에는 '당신들은 기회겠지만 우리들은 삶의 꿈', '너의 재산증식, 우리는 보금자리', '한다리 건너면 당신의 지인집', '침바르는 이곳은 우리들의 피와땀'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A씨는 집이 경매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같은 문구를 쓴 것으로 풀이된다. A씨의 현관문에는 '수도요금 체납입니다. 미납시 단수합니다'라는 인천시 중부 수도사업소 안내문도 붙여져 있었다.
전세금을 떼인 A씨는 전기도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A씨의 집앞에 설치된 전기계량기의 숫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던 A씨는 집에서 식사도 만들어 먹지 못하고 음식을 배달해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 집앞에 놓인 쓰레기 봉투 2곳에는 피자 상자와 중국집에서 시킨것으로 보이는 반찬 등이 발견됐다.
A씨는 또 최근까지 약을 먹었던 것을 보인다. 쓰레기 봉투 안에는 A씨가 7일 처방 받은 약봉투가 발견됐으며, 홀로 반려묘를 키웠는지 고양이 배변 패드 등이 발견됐다.
입주민들은 A씨의 사망소식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입주민 이모씨(30대)는 "A씨는 인사도 잘하고 활기찼던 분으로 기억한다"며 "오늘 A씨 사망 소식을 듣고 놀랐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피해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A씨는 열심히 살았던 분으로 기억했다.
김병렬 피해대책위 부위원장은 "A씨는 새벽에 일찍 일을 나가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등 열심히 사시려고 했던 분 중 한분이었다"며 "대책위에서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고, 인사를 잘 나누고 큰 이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런일이 발생해"라며 말을 흐렸다.
이 아파트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B씨는 입주민 사망 소식을 듣자 안타까워 했다.
B씨는 "문제가 된 아파트는 처음부터 우리 부동산 업자들에게 물건을 넘기거나 소개해 달라는 게 전혀 없었다"며 "처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일이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입주민들이 부동산을 찾아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문의를 많이 했다"며 "그럴때마다 '경매 낙찰을 먼저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게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A씨는 최우선변제금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전세금 9000만원을 한푼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 등에 따르면 이날 새벽 숨진 30대 여성 A씨는 2019년 9월 인천시 미추홀구 B아파트에 전세금 7200만원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21년 12월 재계약 당시 임대인의 요구에 따라 계약금을 1800만원 올려 전세금 9000만원에 재계약을 맺었다.
A씨의 아파트는 2017년 7월 은행권에 1억5000만원에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였다. 이 아파트는 올 3월부터 경매가 개시됐다. 그러나 A씨의 주거지 매각기일은 잡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A씨는 당시 기준으로 최우선변제금 지급대상이 아니었고, 전세금을 한푼도 건지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A씨가 숨진 아파트에는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의 유서가 남겨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숨지기 전날까지 직장에 나갔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A씨는 이날 오전 2시12분쯤 미추홀구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명이었다.
A씨가 숨지면서 지난 2월 첫 사망자 발생 이후 이달 14일에 이어 또다시 피해자 중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사망자는 총 3명으로 늘었다.
한편 건축왕’으로 불리는 C씨는 공인중개사 등과 함께 지난해 1~7월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1채 전세 보증금 125억원을 세입자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일부 피해자들이 시민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오는 18일 오후 인천 주안역 남측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심각한 세입자 주거 불안의 현 상황이 개인 노력이나 기존 제도 내 해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대책위를 출범했다"며 "관련 특별법 제정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활동 이유를 밝혔다.
gut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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