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 칼럼] 김부겸쯤 당선되고 유승민쯤 공천 주는
이런 선거제 만들자는 발언 들어보라
국회 전원위 냉소만 하고 끝낼 일 아냐
시민도 '정치인 욕하는 재미' 넘어서야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선거제 개편 국회 전원위원회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어차피 나눠먹기하지 않겠냐는 냉소 탓이리라. 하지만 지루하고 속 보이는 12시간 토론 속에도 의외의 견해, 울컥할 진심이 박혀있었다. 옥석을 가려 조명하지 않은 언론의 나태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정치인 망언 같은, 많이 읽힐 기사가 아니라서 외면했을 텐데 언론 또한 혐오 정치와 공생한다.
도대체 왜 선거제를 바꿔야 하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의 말 조롱하고 반문하고 모욕 주면 끝”인 반사이익 구조를 “절망의 정치”라고 진단했다. “선거법 개혁의 핵심은 정치다양성 확보다. 다양성을 확보해 경쟁을 되살려야 한다. 김부겸 정도 되면 대구 출마해 당선되고 유승민 정도 되면 공천 안 주려야 안 줄 수가 없는 선거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양극화가 해소되고 반사이익 구조가 깨지고 혐오 전쟁이 멈춘다. 다양성을 통해 한국 정치를 멸종에서 구해 달라.” 더 나은 정치를 열망하며 가슴 뛴 적 있다면, 거기서 거기인 후보들 사이에서 표 줄 곳 몰라 고민했다면, 선거제가 해법의 전부는 아니라도 일부는 될 수 있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일당독재 체제로 지역발전과 민생 정치는 뒷전이다. 경쟁도 없고 책임도 없고 정당정치는 실종된 상태”라고 지역주의의 민낯을 지적했다. 같은 당 김형동 의원은 수도권 의석은 48%나 되는데 농어촌 의석은 갈수록 줄어드는, “대표성이 적어지니까 지역 발전 안 되고 인구 유입 안 되는 지방소멸의 악순환”을 지적했다. 이런 문제 또한 선거제와 관련이 있다.
물론 대안은 어렵고 나열식 토론은 아쉽다. 가장 쉽게 설명한 건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다. “쟁점은 한 명 뽑는 선거냐, 여러 명 뽑는 선거냐다. 한 명을 뽑으면 양당이 단독 과반수 정치를, 여러 명 뽑으면 연합 과반수 정치를 하게 된다.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를 하려면 여러 명 뽑는 선거로 가야 한다. 여러 명 뽑는 유럽 국가들과 한 명 뽑는 미국·영국·한국·프랑스의 민주주의지수를 비교해 보면 여러 명 뽑는 나라들이 앞선 게 우연이 아니다.”
유럽의 제도가 바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다. 유권자는 정당과 후보를 모두 선택하고, 정당 득표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니, 절절하게 말해온 비례성·다양성은 높아지고 의원정수 확대나 위성정당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것.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설득력 있다. “국민 요구는 사표 줄여라, 직접 선택권 넓혀라, 정수 늘리지 말라는 것이다.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는) 낯설다. 낯설다 하더라도 국민 요구를 잘 수용할 안이라면 가야 하지 않나. 그게 정치인 역할 아닌가. 애매하게 말고 확실히 국민 요구에 부합하는 제도여야 한다.”
여전히 자기들 유리한 주장만 하는 것으로 들릴지 모른다.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 노동과 녹색의 의제, 약자의 권리가 더 반영될 수 있다면 꼭 정의당이 아니어도 된다”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말을 믿어보고 싶지 않은가. “선거제 개혁 선택권을 시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정당은 이해관계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이용빈 민주당 의원에 호응해 결정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가.
전원위를 쇼라고 생각한다면 쇼로 끝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냉소가 아니라 열망이다. 발언자 100명 중 10명의 진심이, 거기에 귀 기울이는 시민들이 선거제를 바꿀 것이다. 최근 인터뷰를 했던 한 변호사는 “국민 노릇은 자영업자와 같아서 국회의원 뽑아 맡기기만 해선 안 되고 주인처럼 정책도 살펴야 한다”고 했다. 언제까지 ‘욕하는 재미’로 정치를 구경만 하고 있을 텐가.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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