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6·중국 탱크 정보 줄줄줄…스파이 뺨치는 게임 밀덕들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놨던 미국 정부의 기밀 유출 사건은 기밀 정보를 유출한 용의자로 21세 미 공군 일병이 지목되면서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정보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정보 관리들은 기밀 정보가 유출된 방식과 유출 동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메리카가톨릭대학의 정치학 조교수 조너선 아스코나스와 스탠퍼드대 인터넷 관측소(SIO)의 기술 연구 담당 르네 디레스타는 FP 기고문에서 "이번 기밀 유출은 전통적인 스파이 활동이나 (정치·사회적 목적을 위해 정부 등을 공격하는) '핵티비즘'과는 관련이 없고, 인터넷 대화방에서 영향력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두 사람은 기밀 정보가 외국 정보기관이나 언론 매체를 통해 공개되지 않고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이나 비디오 게임 등의 온라인 게임 채팅 서버에 게시된 점에 주목했다.
기밀문서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미 공군 주 방위군 소속 잭 테세이라(21) 일병은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서 무기 등을 주제로 하는 대화방 '서그 셰이커 센트럴'(Thug Shaker Central)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이 대화방에서 기밀문서를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화방 '서그 셰이커 센트럴'에서 유출된 기밀문서들은 유튜버 '와우 마오'(wow_mao)의 팬들이 모인 대화방과 또 다른 대화방 '마인크래프트 어스 맵'(Minecraft Earth Map) 등으로 유포됐다.
'마인크래프트 어스 맵'에서는 익명의 사용자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온라인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 기밀문서들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기밀문서들은 충격적인 사진 등을 공유하는 익명 대화방 포챈(4chan)과 친(親)러시아 텔레그램 채널 등으로 퍼져나갔다.
아스코나스 조교수와 디레스타는 기고문에서 "인터넷 문화의 가장 깊은 부분을 파헤쳐보지 않고는 유출자의 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5년간 중요한 정보 유출 사건의 상당수는 스파이 활동이나 언론의 탐사 보도 등과 관련이 없으며 21세기 디지털 문화, 특히 온라인 친구들 사이에서 '입지'를 높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됐다는 게 두 사람의 분석이다.
일례로 2021년 무기 디자인과 성능에 관한 기밀 정보가 전투 비디오 게임 '워 선더'(War Thunder) 대화방에 올라왔는데 게이머들은 탱크 포탑의 회전 속도 등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기려고 기밀 장갑 설계도, F-16 전투기 매뉴얼, 중국 탱크 사양 등을 줄줄이 대화방에 올렸다.
기고문에 따르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린 콘텐츠의 가치에 따라 평가받는 인터넷 문화도 정보 유출의 또 다른 동기가 되고 있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밈과 동영상, 링크, 기밀 정보 등을 올릴수록 인터넷 커뮤니티 내 입지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테세이라 일병도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기밀 정보를 요약해 대화방에 올리면서 자신보다 더 어린 대화방 회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팬덤을 누렸다는 것. 그는 어린 회원들의 관심이 시들해지는 것 같자 기밀문서 자체를 대화방에 올리기 시작했다.
아스코나스 조교수와 디레스타는 기고문에서 이번 유출 사건은 단순한 일회성 사건이 아니며 가상 세계가 우정을 나누고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간으로 현실 세계를 빠르게 대체하는 상황에서 기밀문서 유출 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시사점을 주는 사건이라고 짚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된 러시아 용병 기업 와그너그룹 관련 요원들은 비디오 게임 '마인크래프트' 서버에 침투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아스코나스 조교수와 디레스타는 "이번 유출 사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다'고 느꼈을 정보 관리들은 방첩(防諜) 환경이 얼마나 극적으로 변했는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디오 게임 인플루언서들이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FBI 요원들이 K-팝 디스코드 서버에서 정보 유출자를 찾고, 외국 정보기관들이 운영하는 인공지능(AI) 여자친구들이 외로운 (정보) 분석가들을 노리는 세상에서 방첩의 미래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ly native)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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