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주취해소센터 가보니… “만취자 보호해야”
첫날 주취자 없어 한산…조례 제정 시급
인사불성 만취자를 사회가 보호해야 할까. 주취자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음주는 개인의 선택이므로 세금을 들여 이들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과 주취자의 안전을 위해선 보호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지난해 11월 한파 경보가 내려진 날 서울 강북구에서 경찰관이 술에 취한 사람을 집 계단에 앉혀놓고 돌아가는 바람에 주취자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지난 1월에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주취자를 방치한 경찰관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경찰 내부선 “어느 나라 경찰관이 술 취한 인간을 집까지 편히 모셔다주나. 길거리에서 자고 있는 사람 깨우면 출동한 경찰관에게 욕하고 침 뱉고 토하는데 차에 태워 집까지 가 이불까지 덮어주고 나와야 하나”와 같은 반발도 나왔다. 일선에선 주취자로 인해 업무과중·방해에 시달린다고 토로한다.
이런 가운데 부산에선 주취해소센터가 전국 최초로 설치됐다.
부산시자치경찰위원회 부산경찰청 부산소방재난본부 부산의료원이 협업하는 주취해소센터(해소센터)가 지난 11일 부산의료원 응급실 별관에 문을 열었다.
24시간 운영하는 해소센터는 응급의료가 필요 없는 단순 주취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구호시설 개념이다. 입소한 주취자를 관찰하다 응급 의료가 필요하면 응급실 전담의를 즉시 호출한다.
주취자 신고는 매년 증가 추세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주취자 신고는 7만7096건으로 하루에 210건꼴이다. 전년(6만3575건)보다 21% 늘었다.
기자는 해소센터에 대한 근무자들의 의견이 궁금해 지난 12일 새벽 2시 해소센터를 찾았다. 경찰관 2명과 응급구호사 1명이 머물고 있었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최광현 경위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그때까진 주취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센터에 한산한 분위기가 맴돌자 최 경위는 “비바람도 거세긴 했고 평일이라서 그런지 주취자가 없다”며 “경찰관들에게 (해소센터 )를 홍보했지만 아직까진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만취자에겐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사고를 당할 수도, 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주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우리는 경찰관이고 소방관이기 때문에 취객도 보호해야 한다”며 “우리가 주취자 보호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주취자를 보호하는 게 얼마나 힘드냐고 묻자 최 경위는 “혈중 알코올 농도 0.4%에 달하는 주취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4%(소주 약 20잔)는 인사불성을 넘어 사망 위험이 있다. 그러면서 “주취자들이 구토할 때가 많다. 언제 구토를 할지 모르니 옆에 다가가 비닐봉지를 잡고 주취자가 토하길 기다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취자들은 상대하기 쉽지 않아 현장에서 애로사항이 많다”면서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못 해 보호자에게 연락하지 못할 때도 많고 주취자 집 앞에 갔지만 도어락을 해제하지 못해 센터로 돌아올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유흥가를 관리하는 부산진·연제·동래·남부경찰서의 지구대·파출소마다 주취자로 인한 업무 마비를 호소하고 있다. 해소센터는 이 4곳을 대상으로 시범운영한다.
인사불성인 탓에 보호자에게 인계할 수 없어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보호하는 것도 부산지역에서 지난해 6만490건으로 2021년(5만524건)보다 20% 증가했다. 하루 평균 165건에 육박한다.
주취자가 있다는 신고가 119나 112에 들어오면 각각 소방관·경찰관이 현장에서 주취자 상태를 확인하고 병원에 이송할지 해소센터에 입소시킬지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센터에 입소한 만취자는 술을 깬 후 보호자에게 인계하는 것이 원칙이다. 인계가 어렵다면 주취자의 거동이 완전히 자유로울 때 자진 귀가시킨다. 난동 등 폭력 행위자는 관할 경찰서에서 보호하거나 처벌한다.
해소센터 이전에는 부산시 주취자응급의료센터(응급센터)가 운영됐다. 부산의료원이 지난해 8월부터 시범운영했으나 인력 부족 문제에 부딪혔다. 의료원에 응급실 전담의가 2명뿐이라 응급실 업무만으로 벅찼다. 부산의료원은 해소센터 설치로 부담감을 덜었다는 분위기다. 부산의료원 관계자는 “해소센터에서 모든 걸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의료진이 필요한 주취자가 있을 수 있다. 업무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면서도 “응급실 전담의가 업무 부담을 크게 덜었다”고 설명했다.
또 응급센터는 단순 주취자가 응급의료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었다. 일선 경찰의 업무 과중이 줄지 않은 것이다. 해소센터가 성공적으로 정착해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경찰청 오부걸 생활질서계장은 “체계적인 주취자 보호 관리는 물론이고 본인 동의 아래 중독관리 통합지원센터 등 전문기관 상담과 치료도 연계할 계획”이라면서 “다만 시 지원 조례 등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치경찰위 관계자는 “해소센터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시의회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관련 조례는 시범운영이 끝나고 시의회 다음 회기가 열리는 오는 6월에 발의될 예정이다. 이대석 시의회 부의장은 “시의회가 해소센터가 잘 운영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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