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시간’ 논란 속 입법예고 종료…정부 “의견 더 듣겠다”
주 69시간(6일 기준) 노동으로 논란을 빚은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법안 입법 예고 기간이 17일 종료됐다. 정부는 기한 만료와 상관없이 앞으로 대국민 여론조사 등을 통해 의견 청취를 더 하기로 했다. 정부는 애초 이날까지 의견수렴을 마친 뒤 6월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격렬한 반대 여론에 부딪혀 관련 절차가 줄줄이 뒤로 밀리면서 오는 9월 정기국회 이전까지 법안을 완성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당초 정부의 목적은 실노동시간을 줄이려는 것이었지만 저희가 부족했다”며 “제도개혁과 관행개혁의 방향에서 개편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고 현장의 우려가 없도록 디테일하게 (정책을)보완하겠다”고 했다. 개편안 폐지 가능성에는 “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왜곡되고 심화한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와 방향은 확고하다”며 선을 그었다.
정부는 남은 기간 ‘보상 없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감독에 나서겠다고 했다. 포괄 임금·고정OT(연장근로) 오남용 기획 감독과 장시간 노동 대상 기획 감독, 상습 임금체납 근절 대책 발표 등이다.
오는 5월 중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여론조사와 심층면접조사(FGI)도 실시할 예정이다. 조사 대상 및 방식, 문항 등은 전문가그룹과 청년, 노·사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검토할 계획이라고 이 장관은 말했다. 조사를 수행할 기관이나 조사 설계 참여자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개편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노동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아 논란을 자초했다. 정부 개편안 초안을 만든 전문가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재계·경영계 간담회는 진행했지만 노동계 간담회는 하지 않았다. 지난 3월6일 개편안을 발표하고 나서야 정부가 노동자들을 만났지만 ‘편향성’ 논란은 계속 제기됐다. 정부는 대기업·공기업 사무직들로 구성된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를 꾸준히 만나면서도,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과의 정식 간담회·공청회 자리는 만들지 않았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비판적인 청년 노동단체 ‘청년유니온’과의 면담은 갑자기 비공개로 전환돼 청년유니온 측이 반발하기도 했다.
지난 13일에는 국민의힘 청년지도부와 대통령실 청년정책 담당 행정관, 중소벤처기업부 청년보좌역이 중소기업 청년들을 만나겠다면서 중소기업 대표의 아들을 ‘노동자’로 초대·소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앞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의 대상·문항에도 관심이 쏠린다. 여론조사는 문항을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응답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장관은 “이것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다) 아니냐는 이야기는 없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여전히 큰 틀의 변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들이 불안해하거나 우려하거나 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이 상태(현행법)로는 안 된다는 것엔 모두 공감하고 있어서, 어떤식으로 실효성있게 하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또 “입법예고 기간 동안 개편안을 폐기하라는 의견도 들어왔지만, 들여다보면 장시간 노동과 제도 악용이 우려된다는 내용이지 정말 폐기하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정부는 9월 정기국회 개정 전까지 절차를 마무리하되, 필요하다면 시간을 더 들이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이 장관은 “내용의 완성도가 좀 더 높고 우려가 없어진다면 시간이 지금 계획보다 늦어져도 결과적으로 잘 된 것이라고 본다”며 “완성도가 높아지면 야당도 설득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노·사 등 각계도 계속 정부에 의견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지난 40일간 노동부는 개악을 위한 다양한 의견 청취를 통해 ‘입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겠다’라고 말했지만 제대로 진행된 바 없다”며 “국민 의견서를 취합해 18일 제출하겠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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