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1위, '콩나물' 에어팟은 어떻게 시장을 장악했나
‘콩나물 이어폰’ 조롱받았지만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 1위 달성
무선 이어폰 시장 개척에 성공
다시 살펴보는 에어팟 이야기
애플 제품은 출시 전과 후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대표적인 게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이죠. 출시 전엔 '콩나물'이라며 놀림을 받았지만, 지금은 이어폰 트렌드를 이끄는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출시한 뒤로 6년 연속 업계 1위를 달성했을 정도죠. 숱한 경쟁자의 도전에도 에어팟이 오랫동안 1위를 유지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에어팟의 놀라운 혁신을 살펴봤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6년 9월, 애플이 '에어팟'을 공개했습니다. 에어팟을 본 이들은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어폰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연결선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목걸이처럼 생긴 '넥밴드 이어폰'이나 줄로 연결된 '백헤드 이어폰' 등 당시 출시된 무선 이어폰의 대부분은 이어폰의 머리 부분이 서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선이 아예 없는 '완전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은 소비자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독특한 모양새 때문에 '에어팟'은 출시 당시 숱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일부 소비자는 외관을 '콩나물'에 비유하며 조롱 섞인 비난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크기가 작아 분실할 위험이 크다는 게 비난을 받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인터넷상에선 에어팟을 착용한 남성이 춤을 추다가 하수구에 계속해서 빠뜨리고, 그때마다 새 에어팟을 사는 우스꽝스러운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애플은 분실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스트랩'을 제시했습니다. 실리콘 재질의 끈 모양인 이 제품은 두 개의 에어팟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단순한 제품임에도 애플답게 가격이 비쌌죠(약 2만2000원). 더구나 스트랩을 부착하면 에어팟의 외형은 유선 이어폰이나 다름없어집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기존 이어폰을 쓰는 게 낫다"는 소비자들의 질타를 받았고, 그렇게 에어팟은 실패작으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3개월 뒤 애플이 에어팟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자 상황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에어팟이 그야말로 불티난 듯 팔렸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슬라이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당시 애플은 에어팟을 출시한 지 2주 만에 온라인 무선 이어폰 시장 점유율의 26%를 차지했고,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섰습니다(2016년 12월 13일~31일 기준). 출시하자마자 무선 이어폰 업계를 평정한 셈입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에어팟은 이어폰 시장의 판도마저 바꿔놓았습니다. 2016년 170만대에 불과했던 완전 무선 이어폰 출하량은 2018년 3360만대를 기록해 2년 만에 20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그중 에어팟 판매량은 2600만대로 전체의 77.3%를 차지했습니다. 에어팟이 무선 이어폰의 시장을 열어젖힌 거나 다름없었죠. 그 덕분인지 현재 무선 이어폰 시장은 출하량만 6억대(2022년 전망치)에 달하는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에어팟이 완전 무선 이어폰을 '대세'로 만든 1등 공신이었던 셈입니다.
다시 에어팟이 처음 나왔을 때로 돌아가보죠. 출시 전까지만 해도 비난 일색이었던 소비자들의 태도도 출시 직후 찬사로 바뀌었습니다. 2017년 5월 시장조사업체 크리에이티브 스트래티지가 에어팟 이용자 942명에게 '에어팟 제품 만족도'를 물은 결과, 전체의 98.0%가 '매우 만족한다'고 답한 설문조사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에어팟이 이토록 극적인 반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에어팟은 이용자의 편의성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이 지금의 에어팟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에어팟이 출시되기 전, 기존의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려면 꽤 귀찮은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먼저 버튼을 몇초간 눌러 이어폰 전원을 켜고, 또 다른 버튼을 눌러 이어폰과 스마트폰이 블루투스로 연결되도록 하는 '페어링'을 해야 했죠. 이 페어링에 걸리는 시간이 10여초에 달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반면 에어팟의 작동 방식은 간단합니다. 전용 케이스에서 꺼내 귀에 꽂는 순간 이를 인식해 전원이 켜지고 페어링이 바로 진행됩니다. 적외선 센서를 탑재했기에 가능한 기술이죠. 페어링 시간도 5~6초로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페어링이 완료되면 곧바로 음악을 자동 재생해줍니다.
귀에서 빼면 재생을 멈추고, 다시 꽂으면 멈췄던 부분부터 음악을 이어서 들려줍니다. 복잡했던 무선 이어폰의 작동방식을 '에어팟을 케이스에서 꺼낸다→귀에 꽂는다'로 단순화한 겁니다.
편의성을 극대화한 에어팟은 특히 20~30대 젊은 소비자층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거추장스러운 선이 없다는 점에서 에어팟을 선호합니다. 김시월 건국대(소비자정보학) 교수는 젊은 세대가 에어팟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요즘 젊은 소비자의 특징은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복잡한 지하철에서도 자기만의 공간을 추구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편의성이 뛰어난 에어팟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듣길 원하는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선 이어폰의 고질병이었던 높은 지연 시간을 낮춘 것도 에어팟의 대표적인 장점입니다. 여기서 지연 시간은 스마트폰에서 무선 이어폰까지 소리가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데, 당시 시중에 판매되던 무선 이어폰의 지연 시간은 짧게는 165㎳에서 길게는 680㎳에 달했습니다.
그 때문에 영상을 시청하거나 게임을 할 때 0.2~0.4초 소리가 뒤로 밀리는 현상이 발생했죠. 반면 에어팟의 지연 시간은 130㎳로 가장 낮아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운 재생환경을 제공했습니다.
물론 당시의 에어팟이 장점만으로 똘똘 뭉친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에어팟 1세대의 재생시간이 5시간에 불과한 데다 배터리 수명이 길지 않다는 점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혔습니다. 인터넷엔 "1년 이상 에어팟을 써왔는데 2시간이면 에어팟이 꺼진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용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AS센터를 방문해야 하는데, 교체 비용만 17만~18만원에 달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가격은 착하지 않아
에어팟 가격이 기존 이어폰보다 꽤 비싸다는 점(에어팟 1세대 기준 21만9000원)도 소비자들 사이에선 논쟁거리였습니다. 비싼 가격에 비해 에어팟의 음질은 애플이 아이폰을 살 때 함께 제공했던 번들 이어폰과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값이면 고음질을 자랑하는 고가 유선 이어폰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에어팟에 선뜻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더구나 에어팟의 성공 이후 에어팟 못지않은 기능의 저가 브랜드도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중국 브랜드 QCY의 'T3'가 대표적인데, 기능 면에선 에어팟과 거의 동일함에도 가격은 2만원대에 불과했죠.
그럼 시간이 흐른 현재, 에어팟의 입지는 그때와 달라졌을까요?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세계 무선 이어폰 시장에서 애플은 점유율 35.8%을 기록해 2위인 삼성전자(7.5%)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출시한 뒤로 지금까지 쭉 '에어팟 천하'가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이지만, 샤오미(4.4%)뿐만 아니라 무수한 경쟁업체(기타 52.3%)가 등장하면서 과거보다 점유율이 낮아졌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이는 애플이 1위 자리를 내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단 뜻이기 때문입니다.
에어팟 하나로 이어폰 시장을 뒤흔들었던 애플은 앞으로도 업계 1인자로 군림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경쟁업체들에 자리를 내줄까요?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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