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반전’을 아는 연극 ‘키스’
‘어어, 벌써 끝난 거야?’ 기자는 지난 11일 연극 <키스>를 관람했다. 공연시간 100분이 절반도 지나지 않은 느낌인데 객석에 불이 켜지고 배우들이 무대로 나와 인사했다.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배경으로 아메드와 하딜 커플, 유세프와 바나 커플의 엇갈린 사랑을 담은 블랙코미디가 한바탕 벌어진 뒤였다. 난장판 치정극이 웃기긴 했지만 대사가 어쩐지 어색했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바나는 뜬금없이 “나 누군가와 키스했어”라고 말했고, 하딜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속상해하다 쓰러졌다.
우종희 연출이 배우들과 함께 무대로 나왔다. 극본을 쓴 시리아 여성 작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작품의 의미를 듣는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들을수록 관객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진짜 연극의 시작이다. 앞서 치정극을 보며 품었던 의문들이 섬뜩하게 뒤집히며 가슴 아픈 의미로 다가왔다.
<키스>는 서울시극단의 올해 첫 신작이다. 칠레 극작가 기예르모 칼데론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피노체트 독재정권에서 삼촌을 잃은 칼데론은 주로 정치적 투쟁을 담은 희곡을 썼다. 칠레인인 그가 <키스>에선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폭발한 시리아 내전을 다룬다. 반전(反轉)을 통해 반전(反戰)을 호소한다.
<키스>는 2014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초연됐다. 당시 시리아 여성 작가 역은 실제 시리아 출신 배우가 맡았다. 배우는 알아사드 정권이 자신이나 가족에게 보복할 위험 때문에 가명을 사용했다. 칼데론은 이 배우를 보호하려 가발과 선글라스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한국 공연에선 크로아티아 출신 배우 두마노브스키 순치차가 연기한다.
칼데론은 2017년 9월 잡지 ‘아메리칸 시어터’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시리아어를 모르고, 시리아에 가본 적도 없지만, 시리아 내전은 정말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연극은 전쟁과 비극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키스>의 반전은 ‘속았다’는 트릭의 즐거움 이상을 선사한다. 같은 대사 한 줄이라도 얼마나 다르게 변주할 수 있는지 보여주며 연극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시리아를 바라보는 타자(他子)의 윤리도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우종희 연출이 직접 변역까지 맡아 공을 들였다. 우 연출은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작품인 만큼 설정과 대사의 변경을 지양하면서도 동시대적 감각으로 해석하고 표현했다”며 “어떤 면에선 관객, 배우, 스태프 모두의 존재가 어우러져야 온전히 힘을 갖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서울시극단의 신입 단원 정원조와 이승우가 각각 아메드와 통역사 역을, 김유림과 이다해가 각각 하딜과 바나 역을, 최근 연극 <빵야> <실비아, 살다> 등에서 활약한 김세환이 유세프 역을 맡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오는 30일까지 공연한다. R석 4만5000원, S석 3만5000원이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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