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창경궁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습니다"[잃어버린 가족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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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손을 놓치고 가족을 잃은 지 50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까 라는 의문에도 가족을 찾고 있는 김세근씨( 사진)의 기억은 1962년 어느날로 향해 있다.
김씨는 "고모댁에 간 1주일 뒤에 가족들과 영영 헤어지게 됐다"며 "고모댁은 서울 어딘가 산 동네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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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원 떠나 부산 갔다가 붙잡혀 형제복지원에
"20년 넘게 수용시설 갇혀있어"
[파이낸셜뉴스]
"고모 손을 놓치고 가족을 잃은 지 50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까 라는 의문에도 가족을 찾고 있는 김세근씨( 사진)의 기억은 1962년 어느날로 향해 있다. 고모 손을 잡고 서울 창경원에 놀러간 장면. 김씨가 기억한 마지막 가족의 모습이다.
1957년에 태어난 김씨는 1962년 가족과 헤어졌다. 이후 1971년까지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시립아동보호소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김씨의 가족은 군인이었다. 근무지가 자주 바뀌는 직업 특성 탓에 김씨는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김씨는 "외할머니 댁은 큰 기와집이었고 유복했던 걸로 기억한다"며 "할머니 댁은 바다가 보였다. 그곳 변소에서 졸다가 넘어진 기억도 난다"고 회상했다.
그가 기억하는 가족의 모습은 몇 장의 사진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바다에 나갔다. 다같이 방파제를 걷다 김씨는 발을 헛딛여 바다에 빠져버렸다. 정신을 잃은 그는 할머니 댁에서 깨어났다.
어느날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크게 다퉜다. 이때문에 어머니가 발에 깁스를 오랫동안 한 모습이 생각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아버지는 군인이라 거처를 자주 옮겼다. 그 사건 이후 김씨는 서울의 고모댁으로 이사갔다. 김씨는 "고모댁에 간 1주일 뒤에 가족들과 영영 헤어지게 됐다"며 "고모댁은 서울 어딘가 산 동네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타와 인권유린을 자행한 형제복지원의 피해자다. 그는 1971년 무작정 고아원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사람이 가득한 기차 한 가운데에서 새로운 삶을 꿈꿨다. 그러나 부산역에서 열차검표원에 표가 없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그는 결국 형제복지원으로 향했다. 이후 11년이 지난 1982년이 돼서야 김씨는 사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김씨는 "시립아동보호소와 형제복지원을 거쳐 20년 넘게 수용시설에 갇혀 있었다"며 "형제복지원 운동장의 축대를 쌓다고 '도저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복지원을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세근 이라는 본인의 이름도 나이도 정확히 모른다며 머쩍어 했다. 김씨는 "제가 창경원에서 고모 손을 놓치고 나서 제 가슴 팍에 '김세근'이라 적힌 손수건이 나왔다"며 "그 뒤로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고 나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수용시설이 갇히는 동안 부모님 생각을 많이했지만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그래도 다른 가족은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많은 게 궁금해 아직도 가족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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