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맞은 ‘세 친구’, 전국 도서관·책방 돌며 토크쇼 벌이네

양선아 2023. 4. 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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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도서관의 날'이었던 지난 12일 오후 7시, 서울 은평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에 63년생 토끼띠 세 남자가 나타났다.

전국 작은도서관과 작은 책방을 돌아다니며 '환갑 기념 토크 콘서트'를 열기로 한 것.

셋은 그동안 자신들의 책을 읽어준 독자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책, 글쓰기, 도서관'을 옹호하는 마음으로 '환갑삼이 전국 투어 콘서트'를 다닌다.

세 사람의 지지와 옹호는 작은도서관 지기들, 작은 책방 주인들, 그리고 그들을 만나러 온 독자들에게 천군만마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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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평론가 이권우·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이정모·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
‘책, 도서관, 글쓰기’를 사랑하는 20년 지기
지난 1월26일 서울 과학책방 갈다에서 연 첫 ‘환갑삼이’ 토크콘서트에서 도서평론가 이권우씨,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이정모씨,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씨가 활짝 웃고 있다. 이정모씨 제공.

제1회 ‘도서관의 날’이었던 지난 12일 오후 7시, 서울 은평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에 63년생 토끼띠 세 남자가 나타났다.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이자 펭귄각종과학관 관장 이정모씨, 도서평론가 이권우씨,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씨가 그 주인공이다. 도서관 3층 강당엔 세 사람을 만나려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40~5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청중들은 세 사람이 하는 말에 때론 웃고 때론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세 사람의 매력에 풍덩 빠졌다.

이씨 성을 가진 ‘세 친구’는 20년 지기다. 책과 도서관과 글쓰기를 사랑하는 세 사람은 지난해 말 함께 술을 마시다 문득 깨달았다. 세 사람 모두 만 나이로 환갑이라는 것을. 아직도 호기심 가득한 그들은 자신들이 환갑이라는 사실에 “환장할 것 같아” 셋이 뭉쳐 재밌는 일을 벌이기로 했다. 전국 작은도서관과 작은 책방을 돌아다니며 ‘환갑 기념 토크 콘서트’를 열기로 한 것. 이른바 ‘환갑삼이(三李) 전국 투어 콘서트’인데, 세 사람의 ‘합동 환갑잔치’인 셈이다.

‘책, 나이듦, 과학’이라는 열쇳말만 던져줘도, 또 누가 사회를 보더라도, 20년 지기인 이들은 대화가 술술 풀린다. 셋은 지난 1월26일 서울 과학책방 갈다에서 첫 토크콘서트를 한 것을 시작으로 12월까지 올해 총 16번의 토크콘서트를 하기로 했다. 통영, 김해, 서산, 대전, 제주 등 전국 곳곳의 작은 책방과 작은 도서관을 돈다.

지난 12일 서울 은평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도서평론가 이권우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이정모씨,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씨가 ‘환갑삼이’ 토크콘서트를 열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양선아 기자

이날 구산동도서관마을 강연은 ‘환갑삼이’ 다섯 번째 강연이었다. 도서관의 날인 만큼 ‘도서관과 나’라는 주제로 셋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도서관은 지성의 우주이지요. 사실 전 어릴 때 도서관 경험이 없어요. 초등학교 때 교실 하나 터서 책 놓았던 것이 전부였지요. 고등학교 땐 미술 선생님이 도서관 담당이셨는데 도서관 자물쇠를 보여주면서 ‘우리 고등학교는 공부시키려고 도서관 문을 잠근다’ 그러셨어요. (청중들 웃음) 대학 들어와 비로소 도서관을 접했는데 원형 열람실이었고 개가식(열람자가 자유롭게 책에 고르고 보는 방식)이었어요. 문학책, 철학책을 많이 봤고 다양한 잡지도 많이 봤지요. 그렇게 책을 많이 보면서 도서평론가가 됐지요.” (이권우)

“독일로 유학을 갔는데, 인구 25만 명의 본이라는 도시에 걸어갈 수 있는 곳마다 시립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지요. ‘아, 이런 곳에서 살아야겠구나’ 생각했죠. 제 인생을 바꿔준 것이 도서관인데요. 도서관 덕분에 <달력과 권력>이라는 ‘시대의 명저’를 씁니다. (청중들 웃음) 그때 달력에 관한 퀴즈가 있었는데 제가 틀렸어요. 억울해서 도서관에서 달력에 관한 책을 보며 계속 공부했죠. 그런 저를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눈여겨 본 거죠. 그러더니 계속 달력에 관한 책을 찾아 주셨어요. 그만하고 싶은데 계속 달력 책을 주셨어요. 막판엔 장미꽃처럼 화려한 문양의 폰트로 돼 있는 달력 책을 읽으라고 주시더라고요. 사서 선생님에게 ‘도저히 읽을 수 없어요’라고 했더니, 독일에서는 책을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해 타자를 쳐 주는 서비스가 있다며 일주일만 기다리라는 겁니다. 대단하지요? 그때 공부한 내용을 요약해서 한국에 써서 보내 작가가 됐습니다. 도서관의 핵심 역량이 뭘까요? 건물일까요? 책일까요? 저는 사서라고 생각해요. 사서 선생님이 도서관과 공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엮어서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정모)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이런 구절이 나오죠. 이 세상을 멋진 세상으로 바꾸려면 우리가 뭘 해야 할까. 도서관에 기부하라는 얘기가 나오지요. 칼 세이건의 통찰이 멋진 것 같아요. 제 인생의 도서관은 종로 도서관입니다. 중2 때 문예반 활동을 했어요. 겨울방학 때 서울시에서 각 학교에서 세 명씩 뽑아 총 100여명을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글 쓰고 토론하는 캠프를 열었어요. 3학년 형이랑 함께 저도 대표로 뽑혔죠. 당시 문학 퀴즈대회가 있었는데, 저는 문학 작품 요약본으로 공부했어요. 퀴즈대회에서 우리 학교가 우승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징검다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사서분들과 독서회를 일요일마다 했어요. 그런데 도서관에 갈 때마다 안 읽은 책들이 말을 걸어오는 거예요. 그때 문학책들을 독파했습니다.” (이명현)

‘환갑삼이 전국 투어 콘서트’ 일정.

세 사람의 책과 도서관에 대한 경험은 각각 다르지만, 청년 시절부터 환갑이 될 때까지 ‘책, 글쓰기, 도서관’을 옹호하는 마음만은 똑같다. 셋은 그동안 자신들의 책을 읽어준 독자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책, 글쓰기, 도서관’을 옹호하는 마음으로 ‘환갑삼이 전국 투어 콘서트’를 다닌다. 그런 만큼 작은 책방에는 강연료를 받지 않고, 숙박비와 교통비만 지원받는다. 작은 도서관은 일체의 비용을 받지 않는다.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써보고자 하는 마음을 옹호합니다. 오로지 돈이 되는 것, 이익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지배적인 가치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가보면 그것과 대척점에 서서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공동체는 만들고 싶어하는 꿈’이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살아온 사람으로서 살아갈 사람들에게 그 가치가 소중하고 여전히 유효하다고 옹호하고 싶은 거죠.”

세 사람의 지지와 옹호는 작은도서관 지기들, 작은 책방 주인들, 그리고 그들을 만나러 온 독자들에게 천군만마와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의 토크콘서트 분위기는 “거의 부흥회”였다고 이권우 평론가는 전한다. 환갑 이후의 삶, 인생 2모작은 어떻게 지을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에도 ‘책, 도서관, 글쓰기’가 빠지지 않는다.

“철없이 살아왔고 철없이 살다 죽으려고요. 이런 대한민국에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그것을 바탕으로 뻥이나 까고(웃음)… 뭐 그러니까 저희 즐겁잖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살 거예요. 셋 다 더 단출하게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명현 대표가 일을 많이 벌이는 편인데, 이제는 갈다 책방에만 주력하겠다고 하고요. 저는 그동안 잡다하게 책을 많이 읽어왔는데, 유가 철학 그중에 공맹 철학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정모 관장은 아직은 사회적 수명이 있는 것 같아요. 대중적 인기도가 높아 강연하느라고 당분간 바쁠 것 같아요. 어쨌든 셋 다 책 읽고 글 쓰며 재밌게 살 거예요.”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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