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듣기싫다?”…대구, 정책토론청구 기준 강화 움직임에 시민단체 반발
대구시가 시민 의견수렴을 위해 제도화한 토론회의 청구 기준을 대폭 강화하려고 하자 시민사회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사실상 정책에 ‘쓴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조치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대구시는 최근 ‘정책토론청구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17일 밝혔다. 개정안은 토론회 청구인 수를 300명에서 1500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보다 5배 가량 많은 시민의 뜻을 모아야 정책 토론이 가능해진다.
토론청구 대상 기준도 엄격해진다. 대구시는 청구대상에서 제외하는 토론 주제의 기준을 최근 6개월 이내에서 1년 이내로 확대했다. 해당 사무처리 종료일로부터 2년이 지난 경우에는 청구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조항도 신설됐다.
조례는 대구시가 2008년 3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한 것이다. 당시 대구시는 행정 혁신 차원에서 지자체 주도로 만드는 주요 정책에 시민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청구인 대표자가 일정 수 이상의 서명을 받아 정책토론회를 청구하면, 별도 심의위원회에서 1개월 안에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 대구시가 토론회 내용을 실제 정책에 반영할 의무는 없지만 토론 후 결과를 공개하도록 돼 있다.
대구시는 조례 개정사유에 대해 토론회 청구인 수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바꾼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 인구 대비 0.01%(300명)인 현재 기준을 다른 지자체의 상황을 반영해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청구인 수를 1500명으로 늘리면 지난 2월 기준 대구시 인구 236명662명의 약 0.06%가 된다.
현행 정책토론 청구제도는 전국 17개 시·도 중 10곳에서 운영 중이다. 청구인 수 기준으로는 대구(0.01%)가 가장 낮다. 이어 광주·충북(각 0.02%), 전남(0.03%), 대전·경기(각 0.04%) 등의 순이다. 다만 대구에서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단숨에 서울·전북 등과 비슷해 진다.
대구시는 지난해 홍준표 시장 취임 당시 제2의료원 건립 문제로 정책토론이 청구된 것을 계기로 청구인원의 적절성을 따져 조례 개정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는 오는 7월 행정구역 조정으로 경북 군위군이 편입되면서 늘어나는 인구도 개정안 수립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군위군의 인구가 지난 2월 현재 2만3277명으로, 편입을 고려하더라도 대구시의 전체 인구가 크게 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대구시가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정책토론청구의 장벽을 높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대구시는 처음 조례 개정을 예고하면서 ‘이 제도가 특정집단의 주장을 논쟁거리로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이에 행정력이 낭비되고 시민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는 문구를 넣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논란이 일자 해당 문구는 사라졌다. 정책토론회가 열린 횟수는 2008년 조례 제정 후 지금까지 약 15년간 21회에 불과하다.
앞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0일 집회를 열고 대구시가 정책토론청구 제도를 유명무실화하는 조치를 강행한다고 비판했다. 열린 자세로 시정을 펼쳐야 할 대구시가 정책토론을 장려하지는 못할 망정 귀를 닫으려고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홍준표 시장은 주요 정치나 정책 현안 등에 대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여과없이 쓴소리를 하고 있다”면서 “정작 (시민단체 등이)시정에 쓴소리를 좀 한다고 정책토론을 원천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것은 너무 좀스러운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 대구시당도 논평을 내고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고 논쟁과 토론이 다양해야 한다”며 “상대방 입 닫게 하고 본인의 귀를 막아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한다면 정치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김진혁 대구시 정책기획관은 “정책토론청구 조례가 만들어진 15년 전과 비교해 지금은 주민참여예산제 등 시민이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늘었다”면서 “시민단체의 비판을 막기 위해서라든지 홍준표 시장이 정책토론 청구인수 검토를 지시해서 개정안을 만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의회는 오는 25일 열릴 임시회에서 관련 조례안을 상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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