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애태우는 파라과이 대선…보수우파 70년 장기 집권 막내리고 친중 정권 들어서나
대만 국교 단절·중국 교역 강화 공약
‘핑크 타이드’ 확장에 미국도 부담
보수우파가 70년 이상 장기집권한 남미 파라과이에 중도좌파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오는 30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제1야당인 정통급진자유당(PLRA·급진자유당) 에프라인 알레그레 후보가 집권 여당 공화국민연합당(ANR·콜로라도당)의 산티아고 페냐 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번 파라과이 대선은 그간 지리멸렬했던 중도좌파 세력의 정권 탈환 여부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큰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친중 성향의 알레그레 후보는 대만과의 국교 단절과 중국과의 교역 정상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중남미를 ‘뒷마당’으로 여기던 미국은 우군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최근 급속히 세를 불리는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Pink Tide·좌파 물결)’ 물결에 파라과이가 힘을 보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지난달 26일 온두라스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 공식 수교국이 13개로 줄어든 대만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인구 680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7분의 1 수준인 파라과이 대선에 전 세계가 집중하는 이유다.
대선을 약 2주 앞둔 16일 파라과이 일간지 ABC콜로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알레그레 후보는 페냐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 있다. 지난 10일 파라과이 여론조사기관 ‘다토스’ 조사에서 알레그레 후보는 40.6%의 지지를 얻어 35.5%에 그친 페냐 후보를 5.1%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GEO 등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알레그레 후보의 선전은 기적으로 여겨진다. 보수 여당인 콜로라도당은 1947년 이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을 제외하곤 정권을 잃은 적이 없다. 정권 교체에 성공했던 중도좌파 성향의 페르난도 루고 전 대통령도 보수 기득권의 끝없는 방해로 2012년 6월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탄핵당했다.
알레그레 후보는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의 경제 실정 부각에 공을 들이고 있다. 파라과이의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8.1%로 치솟았는데, 알레그레 후보는 대만과 국교를 맺은 상황에서 ‘큰손’ 중국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경기 침체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선에서 승리하면 1957년 7월 이후 60여 년간 이어진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끝낼 수 있다”며 “중국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듯 베니테스 대통령도 지난해 9월 대만을 찾아 “대만이 비수교국엔 60억달러(약 7조9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라며 “대만은 파라과이엔 10억달러(1조3000억원)는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규모 투자가) 대만과의 전략적 동맹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은 파라과이 대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미국 1강 체제 거부와 다자주의 강화를 천명하는 등 ‘탈미국’ 움직임이 가속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우방국인 파라과이마저 중국에 내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알레그레 후보가 당선되면 남미 주요 13개국 중 미국과 비교적 가까운 우파 정권은 에콰도르와 우루과이만 남게 된다. 이에 미국은 지난달 27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워싱턴DC에서 훌리오 아리올라 파라과이 외교장관을 만나 여러 지원을 약속하는 등 파라과이 껴안기에 나섰다.
파라과이 정권이 바뀌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는 쪽은 대만이다. 현재 대만 수교국은 파라과이를 비롯해 교황청(바티칸)과 벨리즈, 에스와티니, 과테말라, 아이티, 나우루, 팔라우, 마셜제도, 세인트키츠네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투발루 등 13개국밖에 남지 않았다. 이중 파라과이는 단연 몸집이 가장 큰 국가다.
미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파라과이가 대만과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무역 관계를 증진하기를 원한다면 이는 달성하기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며 “미국은 대만의 마지막 중남미 외교 동맹국인 파라과이를 지키기 위해 중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막고자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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