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사 뒤에 숨은 전두환 일가…'대국민사과' 10년, 여전히 소송전

조준영 기자 2023. 4. 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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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10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미납 추징금 1,672억원에 대한 자진납부 계획서를 제출하고 검찰을 떠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7월 검찰이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과 자녀들의 자택·업체를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나선지 57일만에 사실상 "백기 투항"한 것이다.2013.9.10/뉴스1


"앞으로 저희 가족 모두는 추징금 완납 시까지 당국의 환수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하겠다."

2013년 9월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나와 이같이 말했다. 이날 전재국씨는 일가를 대표해 미납 추징금 납부를 위한 자신과 전효선, 전재용, 전재만 등 각 가족구성원들의 재산목록을 검찰에 제출했다.

1997년 전두환씨가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지만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자 검찰이 특별환수팀을 꾸려 전방위 조사를 벌였고, 국회도 '전두환 추징법'으로 불리는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 개정안'을 가결해 가족과 일가들에게 빼돌린 비자금 추징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전씨 일가를 압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씨 일가는 상당한 재산을 숨겨놓고 저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납추징금은 총 922억 원으로 1997년 대법원이 선고한 추징액 2205억 중 41.8%를 환수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전두환 추징재산 '55억' 오산땅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추징금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2006년 12월 외삼촌 이창석씨(62·구속)로부터 경기도 오산 일대 토지 49만5000㎡를 불법 증여받는 과정에서 100억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3일 재용씨를 불러 조사했다. 2013.9.4 /뉴스1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7일 교보자산신탁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낸 공매대금 배분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법원이 전씨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공매로 매각된 경기 오산시 임야 땅값 55억원의 배분처분을 허가한 것이다.

검찰은 2013년 7월 전씨 일가가 교보자산신탁에 신탁해 둔 오산 소재 임야 5필지를 압류했다. 해당 부동산이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에 따른 불법재산에 해당하는데, 교보자산신탁은 이를 알면서 취득했다고 본 것이다. 해당 임야에 대한 추징금 몫으로 75억6000만원이 분배됐고, 대법원이 지난해 7월 검찰의 압류가 정당하다고 판단하면서 검찰은 2필지에 대한 배분대금 20억5200여만 원을 우선 지급받았다. 나머지 55억원은 행정소송이 마무리되는 대로 국고로 귀속된다.

오산 땅이 환수되더라도 미납된 추징금은 800억여 원에 달한다. 추징금은 2021년 11월 전씨가 사망하면서 환수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형사소송법상 당사자가 사망하면 추징금 집행절차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산 땅은 마지막 추징재산이라 할 수 있다. 법원은 전씨 사망 이전에 배분처분이 이뤄졌기 때문에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2019년 오산 땅 압류처분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2013년 재국씨가 검찰에 출석해 오산땅의 실제 소유자는 전두환씨임을 인정한다는 취지와, 이를 검찰에 자진납부한다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작성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재판부는 "이 오산땅이 전씨가 이창석 또는 그의 아들 명의를 차용해 소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공무원범죄몰수법의 불법재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7년 넘게 소송진행중…환수에 '하세월'
= 20일 오후 오산시 양산동 독산성 세마대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용씨가 소유한 50만㎡의 토지 일부가 보인다. 사진 속 붉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전씨 명의로 되어있다. 검찰이 이번에 압류한 500억원대 부동산은 환수팀이 지금껏 압류한 재산 중 최고가다.2013.8.20/뉴스1

이 오산 땅은 전씨의 처남 이창석씨가 전씨의 차남 재용씨에게 불법 증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곳이다. 오산 땅 실소유주가 재용씨임을 보여주는 정황도 있다.

2008년 재용씨가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부동산개발회사 비엘에셋은 이창석과 그의 아들과 함께 오산땅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신탁계약을 교보자산신탁과 체결했다. 이듬해엔 이 토지 등을 담보로 비엘에셋이 250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2013년 재국씨는 추징금 납부발표문에서 "주요 납부 재산목록은 다음과 같다. … 전재용 명의의 서울 서초동 소재 부동산과 경기도 오산시 소재 토지 일체 등이다"며 오산땅의 소유자가 재용씨임을 밝힌 바 있다.

신탁사에 불법재산을 숨기는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재판부의 일관된 판단이다. 오산 땅이 범죄를 통해 취득한 불법재산이라는 점을 알면서 수탁했음에도 '신탁재산의 강제집행을 금지한다'는 신탁법을 우선할 경우, 범죄자가 신탁으로 추징집행을 피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2017년 압류처분 무효확인소송을 시작으로 재판집행에 관한 이의신청, 공매대금배분 취소소송 등 신탁사의 끊임없는 소송제기로 환수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013년 저희가 전두환 추징금환수를 위한 특별환수팀을 만들고 두 달만에 전씨 일가가 재산을 납부하겠다며 백기투항했다"며 "그래놓고 실제 검찰이 집행하려고 하니 딴죽 걸고 소송하며 다투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매대금 배분처분 취소판결에 교보자산신탁이 불복해 항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한은 오는 21일이다.

전씨 일가는 2018년부터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 대한 공매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과 '제3자 재산'을 추징할 수 있게 한 공무원몰수특례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추징에 반발해 각종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조준영 기자 c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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