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글로벌 상승률 1위 코스닥, 지수는 올랐지만 기업은 다 떠나려 한다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가 코스피(유가증권시장)로 넘어가려고 했던 거요? 거래소 임원들이 달라붙어서 말렸어요. 거기뿐만이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회사가 코스피로 옮기려고 했었습니다.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들은 하도 무릎을 꿇어서 바지에 구멍 뚫릴 지경입니다.”
최근 만난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에코프로 형제들의 코스피 이전상장 이야기는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에코프로 3형제가 무섭게 질주하자 코스닥 대장주 에코프로비엠의 코스피 이전상장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코스닥시장에서 이름을 날리면 코스피로 넘어가는 사례는 많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49개 기업이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넘어왔다. 코스닥 대장주였던 기업이 넘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2008년 NAVER와 2018년 셀트리온이 그 예다. 코스닥 시총 2위였던 카카오(2017년)와 LG유플러스(2008년), 강원랜드(2003년), 기업은행(2003년)도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혜를 누리며 한때 열풍을 일으켰던 씨젠도 코스피 이전상장을 시도했다.
올해 코스닥시장은 외관으로는 나쁘지 않다. 코스닥지수는 전 세계 주식시장을 통틀어 지수 상승률 1위를 기록 중이다. 코스닥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33% 넘게 폭등했는데,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 상승률(16.8%)과 딱 두 배 차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닥시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넘어가려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SK오션플랜트는 이미 이전상장 절차를 완료해 오는 19일부터는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다. 나이스평가정보와 비에이치도 코스피 이전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에코프로 형제들도 지금 당장은 아닐 수 있지만 언젠가는 코스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코스닥 기업들은 왜 코스피로의 이사를 꿈꿀까. 먼저 기업 입장에서는 코스피200지수 편입의 달콤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코스피로 이전 상장하면 코스피200지수에 편입돼 패시브자금 유입으로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커진다. 시가총액이 커지면 자금 조달 규모도 커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좋다. 지난 2017년 카카오의 코스피 이전 당시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상위 종목들을 코스피200지수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번거롭게 혜택을 받기보다는 짐을 싸들고 코스피로 이사하는 게 속이 편하다.
신뢰도도 한몫한다. 업계 관계자는 “코스피와 코스닥은 신뢰도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코스닥시장은 횡령·배임 및 불공정거래가 빈번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다. 코스피보다 기업 수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코스닥 상장사의 횡령·배임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16년 횡령 혐의 공시를 낸 코스닥 사는 6곳에 불과했으나, 2019년에는 14곳으로 2배 넘게 늘었다. 이후 2020년(15건)과 2021년(13건), 2022년(13건)에도 10곳 넘는 기업이 횡령 혐의 공시를 냈다.
해결책은 하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신뢰를 쌓는 길뿐이다. 기업에 코스닥시장에 남아도 좋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투자자들에게도 코스닥지수가 믿을만한 투자처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면 일단 코스닥시장 자체에 신뢰를 심어야 한다. 상장의 문턱을 높이고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통해 수질관리를 강도 높게 진행해서 코스닥 대표지수 코스닥150도 장기투자에 적합한 지수라는 공감대를 형성해내야 한다. 이 과정이 어렵다면 지난해 11월 선보인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를 더 키우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는 코스닥시장 내 시가총액 상위 기업 가운데 기업 지배구조 등을 고려해 51개 우량주를 뽑은 것이다. 코스닥시장 전체 수질관리가 어렵다면, 믿고 우량한 코스닥 대표 지수를 새로 키우는 길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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