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9주기 현지르포] “멈춰진 시간” 그때 슬픔 그대로 진도 ‘팽목항’
커피봉사하고 리본 묶고, 각자 방식으로 희생자 추모
목포·진도서 ‘세월호 흔적’ 찾아 눈물의 추모행사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남 진도 팽목항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번째 봄을 맞았다. 팽목항 가는 길은 유난히 노란 유채꽃이 만개해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예감케 했다. 화창한 날씨에 사고 해역이 있는 팽목항 방파제 넘어 바닷물은 시리도록 검푸렀다. 팽목항은 지금은 진도항으로 이름이 바뀌어 항만개발이 한창이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이 옮겨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너무 가슴 아파" 발길 돌린 추모객
16일 오후 진도 팽목항 방파제. 수많은 빛바랜 노란 리본들이 난간에서 바닷바람에 나부꼈다. 노란 리본들은 9년 전 그날과 오늘을 잇는 매듭이다. 일부 추모객은 전시된 사고 당시 단원고 학생들이 신었던 운동화를 보고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못 이긴듯 애써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추모객들은 노란 리본 옆을 천천히 걸으며 야속한 바다를 묵묵히 바라봤다. 추모 조형물 앞에는 누군가 가져다 놓은 햄버거와 음료수도 놓였다.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희생자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듯했다. 강진에서 아버지를 따라 온 대학생 딸은 방파제에 좌판을 깔고 대를 이어 9년째 커피 무료 봉사를 했다. 부녀는 작은 봉사가 부끄럽다며 사진촬영을 사양했다.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키우는 김정희(51·전남 나주시)씨는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슬픔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는 하늘의 별이 된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남편, 자녀들과 함께 팽목기억관을 찾은 추모객 이민경(43) 씨는 희생자들의 사진 앞에서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버스를 이용해 단체로 찾은 연로한 추모객은 "아이들 사진보면 너무 가슴 아플 것 같다"며 입구에서 동료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며 발길을 돌렸다.
"봄은, 죽었다"…'기억의 벽에 새겨진 그리움과 분노
방파제 벽에 타일에 새겨진 추모의 글 중에는 '4·16 멈춰진 시간' '별이 된 애기들아! 사랑하고 사랑해' '흘러라 슬픔아'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아무 것도 몰랐다' 등 미안함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담겨져 있었다. 또 '봄은 죽었다' '총체적 부실공화국' '침몰하는 대한민국' 등 정부를 통렬하게 질타하는 글도 있었다. '진실이 꽃 필 때까지'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게'라는 다짐의 글도 있었다.
'기억의 벽'은 사고 이듬해인 2015년 4월 16일 '우리 사회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돈과 권력에 지배받지 않는 민주사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마음을 26개 지역 어린이와 어른들이 타일 4656장에 쓰고 그려 팽목항 방파제에 세워졌다.
어떤 이들은 방파제에 희생자 이름 초성을 새기는 것으로 참사 9주기의 하루를 보냈다. ⟪기억의 벽을 지키는 어린이문학인들⟫ 7명은 이날 낮 12시부터 4시간 동안 허리 굽혀 '기억의 벽' 중앙에 설치된 석판에 새겨진 빛바랜 초성에 흰 물감을 덧칠했다.
김환영 작가는 "처음에는 1주기 때 일부 원치 않은 유족도 있고 우리 모두가 304분일 수도 있었다는 의미에서 굳이 이름 석자 대신 초성만 새겼다"며 "조금 전에도 한 학생이 자신의 이름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갔다"고 했다.
석판 12장 10여 미터에는 희생자 304인의 초성이 새겨져 있다. 재질은 경북 상주에서 가져 온 상주석이다. 원래는 비석돌(오석)에다 이 쓰는 데 너무 무겁고 칙칙해 우울할 것 같아서 살빛이 도는 돌을 수소문 끝에 상주석을 택했다고 김 작가는 설명했다.
세월호 선체 앞·팽목항 기억관 등에서 기억식
'세월호 흔적' 찾아 이날 오전과 오후에는 목포와 진도에서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목포신항은 세월호 선체가 있고 진도 진도항(팽목항)은 사고 해역이 있던 곳으로 희생자들의 시신이 옮겨진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시민단체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는 이날 오전 10시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앞에서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을 열었다. 이날 기억식에는 100여명의 추모객이 함께 참석해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목포혜인여고 3학년 이윤하 양은 "당시 10살의 어린 아이였던 저는 이제 단원고 언니 오빠들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됐다"며 "더 아름답게 만개했을 4월의 봄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노란 리본처럼 우리 가슴에 영원히 새겨질 아름다운 영혼들의 평안한 영면을 빈다"고 말했다. 이 양의 추모사를 들은 추모객들은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주최 측도 선언문을 통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따져 물었다. 이들은 "사고가 난 그날, 그 시간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그날 국가는 없었다. 침몰한 것은 세월호가 아니라 국가였다"고 지적했다.
사고 당시 구조 활동이 이뤄졌던 팽목항(진도항) 기억관 앞에서도 이날 오후 3시 15분부터 1시간 동안 기억식이 열렸다. 세월호 광주시민상주모임 등이 주관한 팽목항 기억식에는 전국에서 100여명이 찾아와 9년 전 그날을 기억했다.
노래 공연과 시 낭독, 살풀이춤 등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자를 추모하며 재발 방지를 되새겼다. 이날 오후 4시 16분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넋을 기리기 위한 사이렌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광주시민상주모임 정기열 공동대표가 대독한 추도사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9년이 됐는데도 왜 그 많은 사람이 구조되지 못했는지, 왜 그 큰 세월호가 갑자기 침몰했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며 "젊은 생명들이 희생당하는 어처구니없고 비극적인 참사가 또 반복됐다"며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했던 노력을 허망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는 여기서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아이들의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 '세월호 운동'으로 확산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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