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이 정한 선 시행령이 넘는다면 [세상에 이런 법이]

박성철 2023. 4. 17. 14:2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 있다.

법률의 위임을 받은 시행령에서 범위가 더 세분화됐다.

법률에서 정한 선을 시행령으로 넘었다.

시행령은 법률에서 위임받은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0월6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한 장관은 이른바 ‘검수완박’ 관련 시행령 개정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시사IN 이명익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 있다. 운송사업자를 규제하는 법이다.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요건을 미리 정해놓았다. 특정 사고가 발생하면 허가 취소나 감차(減車)와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요건 중 하나는 이렇다. “중대한 교통사고 또는 빈번한 교통사고로 많은 사상자를 발생하게 한 경우.” 그러면서 교통사고의 구체적인 범위는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했다.

법률의 위임을 받은 시행령에서 범위가 더 세분화됐다. 어떤 교통사고가 중대한 교통사고이고, 빈번한 교통사고인지. 이렇게 시행령에서 상세화된 요건 중에는 “1건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2인 이하가 중상을 입은 때”가 포함되었다. 

시행령에서 구체화된 요건을 다시 살펴보자. 이런 요건이 가능할까. 어떤 문제가 있을까. 피해자가 중상을 입었다면 중대한 교통사고일 수 있다. 중대한 교통사고를 구체화한 데에는 하자가 없다. 문제는 “2인 이하”에 있다. 

법률에서 정한 요건으로 다시 돌아가 읽고 비교해보자. 법률에서 설정한 요건은, 중대한 교통사고 또는 빈번한 교통사고로 많은 사상자를 발생하게 한 경우다. 교통사고가 중대하든 빈번하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제재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된다. “많은”은 문언상 복수(複數)를 뜻한다. 1인을 많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적어도 2인 이상이라야 한다.

시행령은 어떤가. 2인 이하로 정했다. 1인도 포함된다. 법률에서 2인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때로 정했는데도, 1인을 넣었다. 선을 넘었다. 법률에서 정한 선을 시행령으로 넘었다. 

정당한 목적만으로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확고하다. 시행령은 법률에서 위임받은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만일 법률에서 정한 용어의 의미를 넘어 범위를 더 확장하거나 축소함으로써 위임받은 내용을 구체화하는 수준을 벗어나 새로운 입법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그러한 시행령은 무효라고 한다. 입법은 국회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국 “2인 이하” 시행령 조항 역시 대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됐다.

같은 이유로 무효 판결을 받은 시행령들이 더러 있었다. 특정 이익이 발생한 경우 과세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익을 구체적으로 산정하는 방법을 시행령에 위임한 법률이 있다. 시행령에서는 이익을 계산하는 방법만 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익이 무엇인지까지 정하는 시행령이 만들어졌다. 실제 이익 발생 유무와 무관하게 특정 법률행위가 있으면 이익이 있다고 간주하는 내용까지 담겼다. 역시 무효로 판단됐다. 무효인 시행령에 근거한 과세처분도 위법하다는 판결이 선고됐다. 

모두 좋은 취지였다. 교통사고에 엄히 대응함으로써 피해자를 줄이려 했을 터였다. 법률의 허점을 파고드는 탈세 수법에 대응하려는 선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의도가 괜찮으면 눈 감고 넘어가야 할까. 헌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시행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에 관해 발할 수 있다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헌법이 정하고 있다. 정당한 목적만으로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헌법이 정한 선을 넘을 수 없다. 

박성철 (변호사)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