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연의 닥터스] “시각장애 산모가 3D프린팅 피규어로 태아 얼굴 느껴"

박정연 기자 2023. 4. 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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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준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
조금준 고대구로병원 교수가 최근 고대구로병원 개방형 실험실에서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 제공

번뜩이는 발상은 의사과학자의 자질 중 하나다. 환자들을 돌보면서 임상현장에서 부족한 ‘1%’를 찾는 관찰력이 필요하다. 환자에게 더 좋은 치료 결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과 의료진의 실제 업무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은 직접 의료현장에서 뛰는 의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 많은 의학계 전문가들은 양질의 의사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해선 임상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창의력과 응용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금준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업 아이템’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행동력도 독보적이란 평가다. 조 교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중심병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직접 회사를 창업하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사업화가 추진 중인 아이템 외에도 머릿속에 넘쳐흐르는 아이디어를 연구자나 스타트업과 공유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대구로병원 개방형실험실 사업단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구로구를 중심으로 참신한 바이오 정보통신(IT) 기업 육성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이면서 ‘발명가’의 에너지가 넘치는 조 교수를 최근 고대구로병원에서 만났다.

-연구중심병원 사업 지원을 받아 2016년 첫 창업을 했다. 당시 사업 아이템은. 

“의료기기 및 의료장비연구 개발을 사업내용으로 하는 기업 ‘엠앤비메디텍’을 2016년 3월 설립했다. 당시 3D 프린팅 기술이 막 부상하던 참이었다. 복잡한 구조를 간편하게 구현할 수 있는 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특히 산부인과 의료연구현장에서 발생하는 난제들에 접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산부인과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는 태아의 심장을 살피는 것이다. 심장은 태아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구조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3D 프린팅 기술을 자세히 알게 된 후 태아심장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조형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엠앤비메디텍의 첫 사업 아이템인 ‘3D 프린팅 태아 피규어’는 이렇게 고안됐다. 초음파와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확인한 심장을 실물로 구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태아 피규어는 연구와 교육목적 외에도 쓸 수 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산모들에게 아이의 얼굴형태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용도다. 처음에는 진료와 연구목적으로 개발됐지만 환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형태로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보며 기뻤던 기억이 난다.”

초음파와 CT로 촬영한 태아의 얼굴을 3D 프린팅 조형물로 구현한 모습. 조금준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 제공

-산부인과 의료현장에서 활용할 사업 아이템 아이디어가 많다. 최근에는 ‘산후출혈방지풍선’이란 의료기기를 만들고 있는데.

“산후출혈방지 풍선 또한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부딪치며 생각한 아이템이다. 시작은 저출산 시대 출산 과정에서 산모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면서였다. 많은 산모들은 분만 후 태반의 일부가 자궁에 남아있거나, 자궁이 뒤집히거나, 자궁이 파열되거나, 혈액 응고 능력이 부족하거나 등의 이유로 출혈을 겪게 된다. 500cc 이상의 출혈이 일어나는 경우 ‘분만 후 출혈'로 진단되는데 산모들의 불안감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곤 한다.

산후출혈방지풍선은 쉽게 말해 풍선과 같이 부푸는 형태의 지혈제다. 산도에 삽입해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는다. 다만 앞서 미국에서 개발된 산후출혈방지풍선의 경우 실리콘 재질로 출혈이 일어나는 자궁 부위에 완전히 닿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거즈를 덧대는 아이디어를 더했다. 머지 않은 시일 내에 국내 산모를 대상으로 먼저 선보인 후 장기적으론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그밖에 개발이 진행 중이거나 구상 중인 다른 사업 아이템들이 있다면.

“양수 내 태변 유무를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진단키트가 있다. 태변은 양수에 있는 태아의 대장 내용물을 뜻한다. 태변은 임신부의 스트레스, 저산소증, 산혈증, 감염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출산 전 태변의 발생은 태아의 건강에서 중요한 지표다. 태변에 착색이 일어나는 태아의 경우 일부는 태변이 기도로 흡입되면서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태변의 착색 여부를 의사의 육안으로 관찰한다. 최근 개발이 완료된 진단키트는 태변과 태변 착색 유무를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표지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지키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메타버스 기술에도 주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산모교실‘ 모델을 구상 중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인터넷에는 잘못된 정보가 많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편리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많은 대학병원 교수들이 참여해서 신뢰할 수 있는 건강정보를 올리고 산모들의 궁금증에도 답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주기적인 건강강좌도 개최해 자생력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많은 대학병원들이 메타버스를 활용한 환자 서비스에 주목하고 있는데 좋은 성공모델을 만들고 싶다.”

조금준 교수가 특허 출원한 산후출혈을 방지하는 풍선 형태의 지혈제 단면도. 조금준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 제공

-고대구로병원 개방형 실험실 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이 사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또 주요 성과는 어떠한지.

“개방형실험실은 우수한 연구 역량과 인프라를 보유한 병원에 실험실을 구축한 뒤 기업과 연계해 공동연구를 진행해 창업기업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의료분야에서 창업하기 위해선 임상현장 의사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한데 일선 기업들에게는 이러한 소통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하는 일이 잦다. 기업과 의사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개방형 실험실은 의료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양질의 제품을 더 빠른 속도로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 고대구로병원 개방형 실험실에는 32개 스타트업이 참여 중이다. 모두 뛰어난 역량과 높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개방형 실험에 참여하는 기업 중 ’블루비커‘란 기업과 미팅을 가졌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시술 원리와 과정을 설명하는 3D영상을 개발하고 있다. 그동안은 의사가 종이에 그리거나 써서 설명하던 내용을 생생하게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영상을 확인해 봤는데 완성도가 상당했다. 환자와 의사 간의 소통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구로병원 개방형 실험실에서 고대구로병원 의료진과 참여기업 관계자들이 회의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 제공

-개방형 실험실의 목적 중 하나는 지역기업의 육성이다. 구로구를 중심으로 ’바이오 IT 기업 클러스터 구축‘이란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고대구로병원에서 오랫동안 몸담은 만큼 이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있다. 구로구는 디지털단지가 조성돼 있는 등 이미 신생기업의 산실로 자리한 지역이다. 개방형 실험실에 참여한 스타트업이 바이오IT 분야에서 새로운 줄기를 만드는 것이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대한 융자지원, 청년인턴제도 지원 등 다양한 지원책을 확보하기 위해 영업사원처럼 뛰고 있다. 최근에는 구와 협약을 맺고 ’안양천 건강대회‘란 행사를 추진했다.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개방형 실험실에 참여한 기업들의 사업 아이템을 자연스럽게 만나볼 수 있는 입체적 행사다. 구로구가 의료바이오IT 창업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이 지역에 젊은 인재들이 유입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꿈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후학들에게 한마디.

“의사창업 열풍이 불고 있지만 창업은 굉장히 어렵다. 아무리 자신있는 아이디어도 현실에서 구현하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어려움에 맞닥뜨리곤 한다. 또 실제 사업을 진행하면 수익이나 행정 등 다양한 방면에서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창업에 도전할 때는 주변의 조언을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 나 자신의 생각에만 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현실성이 있는지 많은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분야, 자신있는 분야에서 출발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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