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부터 계획된 ‘강남 마약음료’…1회 투약량 3.3배 넘는 필로폰 함유
마약 음료 1병에 필로폰 0.1g으로 1회 투약량의 3.3배
1병 통째로 마신 학생도…”일주일 동안 상당한 고통”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진 이른바 ‘마약 음료’ 사건은 6개월 전부터 계획된 범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마약 조직과 보이스피싱 조직이 결합한 신종범죄라고 보고,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상선 등 추가 공범 추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17일 대치동 일대에 배포된 마약 음료를 제조한 길모(25)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범죄집단 가입·활동, 공갈미수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송치했다. 마약 음료를 마신 학생들 부모에게 협박 전화를 할 수 있도록 발신번호를 조작한 혐의(전기통신사업법 위반)를 받는 30대 남성 김모씨도 함께 검찰에 넘겨졌다.
마약 음료를 제조할 수 있도록 필로폰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마약 공급책 A씨는 별건으로 지난 4일 경찰에 검거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의자는 길씨·김씨·A씨를 포함해 중국에 거주 중인 ‘윗선’ 2명, 또 다른 마약 공급책 1명, 학생들에게 마약 음료를 건넨 아르바이트생 4명 등 총 10명이다.
◇ 6개월 전 중국으로 넘어가 범죄 계획
경찰은 이번 사건이 6개월 전인 작년 10월부터 계획된 범죄라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상선인 이모(25)씨가 작년 10월 17일 중국으로 건너가 이미 활동하고 있던 보이스피싱 조직에 합류한 뒤 범행을 모의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보이스피싱·마약 범죄와는 관련 없는 전과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이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 박모(39)씨와 함께 중국에서 정보 수집을 통해 범행을 계획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친구·가족들에게 이야기한 정황을 보면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하기 위해 (중국으로) 출국했다고 볼 수 있다”며 “모든 범죄가 중국에서 계획됐기 때문에 중간책 이상을 검거해야 실체 파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씨·박씨는 마약 음료를 만들기 위해 마약 유통 조직에 필로폰 매수를 의뢰하는 한편 지난달 25일 중국에서 국제택배를 통해 마약 음료 제조에 사용할 공병과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등이 쓰인 스티커, 판촉물, 인형 등을 한국에 있는 길씨에게 전달했다. 길씨와 이씨는 중학교 동창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 매수 의뢰를 받은 조직원들은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길씨에게 필로폰 10g을 전달했고, 길씨는 지난 1일 필로폰에 중국산 우유를 섞어 마약 음료 100병을 제조한 뒤 이를 서울에 있는 아르바이트생 4명에게 전달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구인·구직 사이트와 대학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구인 글을 보고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들이 범행에 가담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씨·박씨는 소셜미디어(SNS)와 대포폰을 통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배송받은 음료를 가지고 2인 1조로 시음행사를 진행하라’ ‘시음행사 진행 시 학생·학부모 연락처를 적을 수 있도록 설문지를 만들어라’ ‘완성된 설문지를 카카오톡으로 보고하라’ 등을 지시했고, 아르바이트생들은 지시에 따라 지난 3일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 음료를 건네 마시게 했다.
◇ 마약 음료 1병에 1회 투약량의 3.3배 필로폰 들어가
경찰 조사 결과 마약 음료 1병에 담겨있던 필로폰 양은 0.1g이었다. 일반적인 필로폰 1회 투약량 0.03g보다 3.3배 많은 수치다. 경찰은 혈관 투약과 비교해 음용 투약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치명적인 수치라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투약 경험이 없는 미성년자가 3.3배 달하는 양을 1회 투약했을 때 급성 중독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급성 중독에 걸릴 경우 정신착란이나 기억력 상실 등 심각한 신체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배포된 마약 음료는 100병 중 18병이다. 이 중 8병이 음용돼 피해자는 학생 8명, 학부모 1명 등 총 9명으로 나타났다. 4병은 음용되지 않았고, 나머지 6병이 음용됐는지 여부를 확인 중이다.
피해자 중 학생 1명은 마약 음료 1병을 전부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1병을 다 마신 학생이 일주일 동안 상당히 고통을 받았다”며 “받은 충격이 굉장히 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속칭 ‘전화집’도 범행 가담…금전적 피해는 없어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이른바 ‘전화집’으로 불리는 발신번호 변작·중계기 운영 조직도 가담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씨·박씨가 이 조직에 대포폰 회선 할당 의뢰 등을 했고, 의뢰를 받은 조직이 이날 구속송치된 국내 중계기 관리·운영책 김씨에게 순차적으로 의뢰를 했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학부모 협박용 전화번호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변작해준 김씨는 과거 1억원의 피해를 발생시킨 보이스피싱 범죄 14건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 중계기 관리·운영책은 여러 보이스피싱 콜센터의 의뢰를 받아 개당 수수료를 받는 구조”라며 “김씨가 관리했던 전화번호가 100여개 이상 확인됐다. 여러 조직이 중계기를 이용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에서 협박 전화를 받은 사람은 모두 학부모로 총 6명이다. 이 중 1억원을 달라는 등 구체적인 금액을 요구한 경우는 1건이다. 학부모들은 협박 전화가 보이스피싱이라고 의심해 곧바로 관계기관에 신고를 해 실제 돈이 송금된 경우는 없었다.
경찰은 중국에 체류 중인 이씨·박씨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하는 한편 이들이 이용한 카카오톡 계정과 구인·구직사이트 등에 대한 압수영장을 집행하는 등 추가 공범 추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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