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청소년들은 과연 대안이 없는가?  

2023. 4. 1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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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SOCIETY] 청소년 문제, 단속 아닌 마을 공동체 지원 체계로 해결을

[강경숙 원광대학교 교수]
<더글로리>가 넷플릭스에서 최대 흥행작(전 세계 주간 3위)에 오르며 대한민국 학교폭력의 현주소를 세계적으로 알린 데 이어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폭 사건이 사회문제가 되었다. 정부는 예상대로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대입(정시 포함) 전형 반영 비중을 강화함으로써 근절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전형적인 단속정책으로 회귀한 것이다. 이어서 강남대로에서 청소년들에게 마약을 대낮에 나눠주는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이라도 치를 것처럼 검경 수사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청소년 비행과 일탈을 무조건 관용으로 풀어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단속과 보호 일변도의 청소년정책으로 정작 보호와 지원이 절실한 청소년들이 오히려 미궁에 빠지는 역설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이다. 특히 보호 종료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윤 정부 청소년 정책의 맹목과 일방독주를 두려운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어른들은 여전히 모르는 청소년 문제

넷플릭스, Bj, 유튜브, 마약…, 숨 가쁘게 변하는 청소년 하위문화의 속내를 어른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 검경과 행정력을 동원한 단속이란 청소년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고 일탈 행위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심하게 표현하면 일종의 '두더지 잡기' 방식이다. 일탈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블랙박스(black box)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다. 어쩌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단속의 '선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속과 처벌만으로 문제가 풀린다면 각종 총기로 중무장한 미국 같은 나라에서 마약, 살인 등 청소년 범죄가 훨씬 심각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컨대 코로나 이후 청소년 건강문제를 살펴보자. 아침식사 결식률과 비만율이 증가하였고(질병청, 2022),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정서적 문제도 악화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2022)에 따르면 10대 우울증 환자는 2018년 4만3029명이던 것이 2020년 4만7774명, 2021년 5만7587명으로, 10대 불안장애 환자는 2018년 2만1489명이던 것이 2020년 2만5190명, 2021년 3만1701명으로 각각 증가했다. 급증한 정서장애 청소년들의 성장 과정에서 각종 일탈 행위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단속과 처벌만으로 다스리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정순신 아들의 학폭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의 사회적 특권의식이 청소년기의 폭력성에 덧칠되어 나타난 경우이다. 가해학생이 대입에서 경미한 불이익만 입고 일류대 입학에 성공하였다고 해서 입시 제도를 바꾸는 데서 학폭 문제 대응이 끝난다면 제2, 제3의 정순신 아들 사건이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디지털 성범죄의 급격한 증가, 아동·청소년 자살률 증가, 중퇴, 가출자 증가 등 청소년들이 당면한 위기징후는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청소년 문제에 대한 열린 시각의 접근 없이는 현 정부가 당면한 곤혹스러운 딜레마, 즉 "청소년 수는 줄어들고 단속은 강화하는데 왜 청소년 범죄는 늘어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쉼터에 살았다'

보호 종료 청소년 문제를 지도 단속과 처벌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현 정부 관계자들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강남의 구립 청소년 쉼터를 폐쇄하겠다는 뉴스가 있었다. 재정 자립도 1위의 강남구인데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지난해 청소년 쉼터 중 재정난으로 허덕이는 곳이 늘고 있다. 웹툰 <쉼터에 살았다>를 보면 길거리를 표류하는 청소년들에게 쉼터는 생명의 구명정이자 최후의 안전망이다.

현 정부가 제4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22.6), 학교안팎 청소년 지원강화대책(’22.10), 고위기 청소년 지원 강화방안(’22.11), 학교 밖 청소년 지원 강화 대책(’22.12) 등을 연달아 발표하고 올해 2월 제7차 청소년정책 기본계획(’23~’27)을 발표했지만, 1차년도인 올해부터 예산의 벽에 막혀 실질적인 지원은 현실화되지 않고 단속만이 난무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시설 및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청소년들은 보호 종료가 되면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 시설을 전전하며 거리를 떠돌게 된다. 복지혜택이 주어지는 제도의 자발적 신청률이 낮고 더구나 중도에 퇴소하는 청소년의 경우 법적 근거가 복잡하여 복지혜택 적용이 안 된다. 안타깝게도 부적응으로 인한 사회적 소외는 물론이고 심지어 자살에 이르는 비율도 높은 편이다.

청소년 쉼터를 비행 청소년이 가는 곳으로 볼 게 아니다. 위기 청소년들의 일탈을 막는 건전하고 편안한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복지 제도 정비와 관심, 예산 지원과 여러 학습 및 체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중장기 청소년쉼터도 시급하다. 그런데 자치단체마다 예산 등의 이유로 쉼터나 주거 복지 안전망 지원이 부족하다. 보호 종료 청소년 자립정착금은 제각기 다르고, 쉼터 퇴소 아동을 위한 지원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길거리 청소년 문제 등의 대책은 여전히 요원하다. 홍대 인근 거리 풍경(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프레시안

자립준비 청년에게 희망을

단속과 처벌에서 보호와 지원으로 정책전환을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시설 아동이 시설에 거주하는 기간에는 공동체 생활, 자립교육, 진로교육, 인적네트워크, 조언자를 필요로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시행착오를 겪도록 하고, 자존감을 높일 기회도 마련해 줘야 한다. 중도 퇴소자는 이동, 원 가정 복귀, 가출, 만기 퇴소가 아닌 이유로 혜택이 거의 없는데 이를 정책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 보호종료 청소년은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회복탄력성과 자존감 낮은 경우가 많아 우선 정서적, 사회적 지지자 겸 조언자를 필요로 한다.

서울 은평구는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을 통해 자립준비청년 사회진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은평구는 산하에 자립준비청년청(은평자준청)을 두어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개인이나 사회관계망 형성 지원을 위한 활동지원 중심의 지원을 하고 있다. 은평구는 자립준비청년 지원 전담인력 네트워크를 통해 시설 내 자립준비청년 퇴소 준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자립전담요원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기도 한다. 선배시민멘토단 사업으로 50세 이상 성인과 자립준비청년의 멘토링을 연계하고, 저활력 자립준비청년의 심리정서 및 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자립에 필요한 재무관리와 자산형성지원도 외부자원과 연계하여 운영한다.

마을 은퇴자 및 전문가 집단이 자원봉사자로서 자립준비청년과 만나도록 네트워킹하여 좀 더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등 마을 단위에서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하는 마을 돌봄 시스템이 필요하다. 즉 예방적 성격의 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미 여러 청소년정책 시스템이 있지만, 산재한 정책들을 하나로 연결된 플랫폼으로 문제해결 접근이 가능하게끔 바꿔야 한다. 청소년, 교사, 학부모, 이웃, 멘토들, 관련 사회단체 등이 청소년 위기 해결을 위한 통합적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해 관련 정책에 직접 참여하고, 스스로 연계 활동을 촉진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힐링, 나눔과 소통 문화를 구축하도록 온 국민이 참여하는 청소년 돌봄, 나아가 총체적 돌봄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마을 돌봄 시스템에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은퇴자를 중심으로 자원봉사자를 활용한다면 자립준비청년 지원에서 나아가 평생교육 체계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자립준비청년 사이에도 활력(적응력)의 차이가 있으므로 지원 사업은 개인 맞춤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저활력 청년은 내적 에너지는 있으나 사회진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고활력 청년의 경우 자격취득 등 실질적인 사회진입 요구가 클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점을 감안한 맞춤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자립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의 심리지원을 위한 사회적 지지망(support network)과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민간과 공공이 함께 협력해서 지원 체계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업스트림, 그리고 겸손과 지구력

무엇보다 위기청소년을 구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한겨레, 2022.7.12.).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판사는 '6호 처분을 내려야 하는 상황인데도 시설이 부족하다보니 부득이하게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소년원 송치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공교육 등 제도권에서 이탈해 학교 밖으로 나간 청소년이 가정 외에도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청소년시설을 갖추는 등 사회안전망을 구비하는 데에 행정력을 집중하여야 한다.

현장에서 애써 일하고 있는 단체 간 연계도 강화하여야 한다. 즉 청소년 단체 모델링 및 확산, 청소년 활동가 발굴, 단체 간 연계 및 지원, 청소년 단체와 개인 간의 연계 강화, 청소년 문제 사각지대 발굴, 지역사회 자원 발굴 등을 위해 각 단체가 협력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지원해야 한다.

댄 히스는 <업스트림>이란 책에서 '문제에 가까이 다가가면 강력한 힘이 생긴다. 한 사람을 돕는 방법을 알기 전에는 1천 명 혹은 1백만 명을 도울 수 없다.'고 했다. 시스템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문제가 발생하면 아랫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즉 적당히 수습하기보다는 상류로 올라가서 해결해야 한다. 즉 최상의 문제 대응은 사후 해결이 아니라 예방이다.

필자는 단속과 처벌 위주의 윤석열 정부 청소년 정책에서 가장 필요한 심리적 자원이 '겸손과 지구력'이라고 본다. 지도 단속은 기본적으로 단속하는 권력의 도덕적 정당성, 인지적 우월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기초석을 쌓아가는 시기에 존재 위기로 몰리는 청소년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두고 성인이 모든 정답과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접근하는 방식은 오만한 권력편향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 강경숙은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중등특수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7~2018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본회의 위원을 지냈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집행위원, 국무총리실 장애인정책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윈회 위원,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겸 교육복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경숙 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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