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같은 보증금…삶 등진 피해 청년 ‘인천서 세번째’ [현장, 그곳&]
“희생 반복…정부, 근본적 대책 마련” 촉구
“(전세사기) 피해자가 또 극단적 선택을 했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것도 꽃다운 청년들이 3명씩이나.”
17일 오전 11시께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한 아파트. 입구에는 ‘전세사기 피해아파트’라는 붉은색 현수막이 걸려있다. ‘당신은 경매장사꾼입니까’라는 현수막도 보인다.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 를 보러 온 부동산 업자들을 향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60가구 모두가 전세사기로 경매에 넘어간 곳이다.
이날 오전 2시12분께 이 아파트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A씨(31·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자주 왕래하던 지인의 신고로 출동한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자택에선 유서가 발견됐다.
A씨의 집 현관문에는 ‘전세사기 수사중’이라는 경찰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계약 시 또다른 피해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문도 보인다. 문 앞 쓰레기봉투에는 수도요금 등의 체납을 알리는 고지서가 쌓여있다. 고인이 받았던 경제적 고통을 짐작케 한다. A씨기 떼인 전세 보증금은 9천만원에 이른다. 현관문의 다른 한켠에는 간절히 피해 구제를 바라던 고인의 마지막 외침이 붙어 있다. ‘당신들은 기회겠지만 우리들은 삶의 꿈!’ ‘너희는 재산증식, 우리는 보금자리’
이 곳에서 만난 주민 B씨(40·여)는 “평소 알고 지냈는데, 아침에 소식을 듣고 울었다”고 했다. “같은 전세사기 피해자이기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아픔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평소 밤늦게까지 일해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 모임엔 자주 못나왔지만, 단체채팅방 등에선 피해 복구를 간절히 바라며 활발히 활동했다”고도 했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전세 보증금 125억원을 가로챈 이른바 ‘건축왕’ C씨(61)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며 “타살 혐의점이나 범죄 관련성이 안 보이면 가족에게 인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4일에도 인근의 한 아파트에서 A씨처럼 C씨에게 보증금을 받지 못한 20대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 2월28일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는 7천만원의 보증금을 떼인 30대 남성 D씨도 같은 선택을 했다. 지난 2개월 사이 20~30대 3명이 전세사기 때문에 세상을 뜬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21년 9월 임대인의 요구로 7천200만원이던 보증금 9천만원으로 올려 재계약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이 아파트가 통째로 경매에 넘어가면서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위는 18일 오후 7시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남측 광장에서 D씨의 49재 등 전세사기로 숨진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행사를 연다. 또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며 ‘전국 단위 피해자 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A씨가 전세 사기 피해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함께 피해 복구를 위해 애써왔기에, 이 같은 선택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지금 정부의 대책으로는 계속 같은 희생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주장했다.
한편, ‘건축왕’ C씨와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등은 지난해 1~7월 미추홀구 아파트 세입자 161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125억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부동산실명법 위반 등)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민수 기자 minsnim@kyeonggi.com
박귀빈 기자 pgb028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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