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참사 악용’ 여의도 방정식

김윤희 기자 2023. 4. 1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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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4일 오후 11시 19분쯤 전남 신안군 임자면 대비치도 인근 해상에서 24t급 어선 청보호가 전복됐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김포골드라인 현장 사진은 지난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인프라 투자 같은 근본대책은 깊게 생각해본 적 없이 이제야 '커팅맨' '수륙양용버스' 같은 설익은 아이디어만 쏟아내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진상 규명에 당의 사활을 걸었을 뿐 재발방지 대책에는 손을 놓았던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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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정치부 차장

지난 2월 4일 오후 11시 19분쯤 전남 신안군 임자면 대비치도 인근 해상에서 24t급 어선 청보호가 전복됐다. 배는 기관실에 물이 찼다는 기관장의 다급한 고함이 들려온 후 급격히 기울기 시작해 약 10분 만에 뒤집혔다. 선원 대부분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고 선박 침몰 시 자동으로 펴져야 할 구명뗏목도 작동하지 않았다. 배에 타고 있던 12명 중 9명이 결국 목숨을 잃었다. 수사본부는 두 달여 만인 지난 7일 청보호 전복 원인을 ‘과적’으로 결론 내렸다. 2014년 4월 16일 단원고 학생 250명을 비롯한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인 그 ‘과적’이다.

소름 끼치는 기시감은 또 있었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김포골드라인 현장 사진은 지난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김포골드라인에선 수년간 경고음도 쉼 없이 울렸다.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승객이 이어졌는데도 정치인들은 김포골드라인 체험 사진을 올리고는 이내 머릿속에서 기억을 지웠다. 인프라 투자 같은 근본대책은 깊게 생각해본 적 없이 이제야 ‘커팅맨’ ‘수륙양용버스’ 같은 설익은 아이디어만 쏟아내는 것이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에도 무엇이 달라졌나. 적어도 유족들은 슬픔에 묻혀 있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내려 했다. 이제라도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 손을 이끌었을 것이다. 권력은 유족의 그런 선의를 ‘선거 방정식’에 쏟아부었다.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재난은 야당엔 플러스, 정부·여당엔 마이너스라는 게 여의도의 공공연한 공식이다. 진상규명위원회 규모, 활동 기간, 예산, 유족과의 만남 여부, 유감을 표명하는 발언 길이와 시점까지 여야는 계산기에 넣고 유불리를 따졌다.

김포골드라인 사태를 대하는 권력의 행태도 변한 게 없다. 김포골드라인의 아슬아슬한 출근길은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다.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2021년 5월엔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가 김포골드라인 출근길을 체험했다. 민주당 출신 김포시장이었다가 이제는 국민의힘으로 갈아탄 유영록 전 시장, 민주당 소속 정하영 전 시장, 국민의힘 소속 김병수 현 시장도 시정 교체 때마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최근 김포골드라인을 탑승한 뒤 “민주당 출신 전임 시장들의 무책임 행정이 빚어낸 결과”라고 했다. 민주당 소속 김주영·박상혁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 시장이 선출되고서야 뒤늦게 비판 성명을 냈다.

야 3당은 이번 주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한다. 안전대책에는 손을 놓던 이들이 또 정치 공세나 벌이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진상 규명에 당의 사활을 걸었을 뿐 재발방지 대책에는 손을 놓았던 이들이다. 이 때문에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해상 사고는 줄어들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나 이태원 단어만 나와도 귀를 막고 고개를 돌린다. 여당은 세월호 9주년 논평에서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을 뿐 국가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야당 때 강조했던 ‘국가 책무’는 선거 때 이용하고 끝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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